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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오디세이] 케이퍼 필름의 탄생

<아스팔트 정글> The Asphalt Jungle, 존 휴스턴, 1950년

존 휴스턴은 자기 파괴적인 삶으로 유명한 감독이다. 그래서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도박과 술, 그리고 미인들에 둘러싸여 재능을 탕진하듯 살았다. <야생마>(The Misfits, 1961)를 찍을 때는 매일 밤을 젊은 여자들과 술로 지새우고, 낮에 취한 상태로 일했다. 할리우드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실제 생활은 ‘경계선 위’의 불안한 범죄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노름빚 때문에 피 말리듯 쫓기는 신세에 놓인 적이 어디 한두번이던가. 그래서인지 그가 범죄자를 다룰 때는 정말 실감난다. 어설픈 흉내가 아니라 경험이 재연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한 탕 터는 그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다

<아스팔트 정글>은 이른바 ‘케이퍼 필름’(Caper Film)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다. 케이퍼 필름은 범죄 행위를 세세히 연기해내는 지극히 ‘위험한’ 영화인데, 바로 <아스팔트 정글>을 통해 그 첫 틀이 갖춰졌다. 공식은 이렇다. 일련의 범죄자들이 모인다. 이들은 모두 한 가지씩 특기를 갖고 있는 프로들이다. 계획은 세상이 놀랄 만한 ‘한탕’을 성공한 뒤, 평생 놀고먹을 돈을 나눠 갖고 튀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불운이나 실수가 일어나고, 일행은 차례로 죽고 만다. 큐브릭의 <킬링>(1956), 줄스 다신의 <리피피>(1955), 그리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1992)까지 케이퍼 필름의 후속작들은 끊이지 않고 발표됐다.

결말은 범죄자들이 모두 처벌받는 것이니 안도감이 들 수 있지만, 이런 영화들이 위험한 것은 프로들이 범죄 행위를 생생하게 재연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너무나 친절하게 경비망을 뚫고 들어가는 방법, 금고를 여는 방법 등을 가르쳐준다. 왜 그러는가? 영화는 우리에게 죄를 지으라고 추동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에 대한 답은 잠시 뒤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우선 영화부터 보자.

‘박사’(샘 재프)라는 범죄기획의 고수가 막 출옥한다. 그는 나오자마자 유명한 보석가게를 털 계획을 세운다. 박사의 ‘머리’는 이미 소문이 나 있고, 그의 완벽한 계획은 입이 벌어지게 한다. 과학자처럼 치밀해 보이지만, 그는 10대 소녀를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허점도 있다. 박사는 주먹을 쓰는 건달(스털링 헤이든), 금고털이(앤서니 카루소), 그리고 노련한 운전사(제임스 화이트모어) 등으로 행동대원을 구성했다. 그에게 범죄자금을 대주는 인물은 거물급 변호사(루이스 캘헌)다.

최근의 케이퍼 필름인 ‘오션스 시리즈’를 생각해보면 큰 차이가 하나 보이는데, <아스팔트 정글>에는 스타 배우가 없다. 큐브릭의 영화로 제법 알려진 헤이든도 무명에 가까웠다. 그러니 범죄단 사이에 수직적인 상하관계 같은 것을 느낄 수 없다. 스타 없이 성격배우들로만 캐스팅한 것은 휴스턴 감독의 계획이었는데, 그럼으로써 감독은 스타가 필요한 협주곡이 아니라, 교향곡을 연주하는 지휘자와 같은 위치를 갖게 됐다. 휴스턴은 배우들을 일사불란하게 연기하게 했고, 이런 점이 부각되어 감독은 배우들의 노련한 조련사라는 평가도 받게 된다. 무명이었던 마릴린 먼로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비중있는 배역을 맡았다.

보석털이는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예정대로(?) 사고가 난다. 먼저 금고털이가 어이없게 가슴에 총을 맞았다. 한번 피를 보면 불행은 끊이지 않고 뒤따르는 법. 뒤를 봐주기로 했던 변호사는 보석을 넘겨받는 순간 배신을 하려 한다. 그의 부하인 사립탐정과 건달이 서로 총질을 하다 탐정은 즉사하고, 건달도 허리에 총상을 입는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변호사는 권총자살한다. 남은 사람은 총상을 입은 건달과 ‘머리’인 박사, 둘뿐이다. 이들이 잡히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전설의 라스트 신, 건달의 죽는 장면

<아스팔트 정글>의 인물들은 모두 범죄를 일처럼 하는 사람들이다. 먹고살기 위해 죄를 짓는다. 그러니 이들에게 범죄는 직업이다. 이들은 카리스마가 넘치는 갱스터도 아니고, 누아르의 반영웅처럼 윤리적인 인물도 아니다. 죄를 짓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타락한 변호사의 유명한 대사처럼 이들에게 “범죄는 인간 노력의 색다른 형태”(Crime is only a left-handed form of human endeavor)일 뿐이다. 세상에는 여러 직업이 있듯, 이들의 직업은 범죄다. 그래서 케이퍼 필름은 이들이 노동하는 모습, 곧 범죄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찍는다. 일하는 것을 찍는 것은 위험한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 아닌가. 말하자면 세상은 범죄로 뒤덮여 있고 우리 모두는 범죄자나 다름없다는 휴스턴 감독의 지독한 염세주의가 배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케이퍼 필름은 탄생했다.

전설로 남아 있는 마지막 장면에서 건달은 어릴 때의 고향인 농장을 찾아간다. 그는 늘 그 농장을 되찾으려고 도박을 했다. 비록 도시의 범죄세계에서 살았지만, 성장기를 보냈던 자연의 풍경은 그에게 영원한 고향으로 남아 있었다. 허리에선 피가 흐르고, 그는 그렇게 바랐던 말들 사이에서 아쉽게도 쓰러져 죽는다. 낙원 같은 풍경 속에 돌아갔는데, 죽음으로써 그 꿈이 실현된 것이다. 비록 세상은 선과 악의 구조 자체가 무너진 범죄의 소굴이 됐지만,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 곧 순수의 세계를 염원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맺는다.

다음에는 ‘권총에 미친’ 여성 범죄자의 ‘활약’을 그린 조셉 H. 루이스의 <건 크레이지>(Gun Crazy, 1950)를 통해 권총과 여성 사이의 에로티시즘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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