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영화제
[제9회 서울국제영화제 가이드] 실험정신의 향연을 즐겨라!

10편의 씨네21 추천작!

히어로즈 Heros 브뤼노 메를 | 프랑스 | 2007년 | 116분 | 오버 더 시네마

심장을, 귀를 조심해야 한다. 브뤼노 메를 감독의 장편 데뷔작 <히어로즈>는 깜짝 놀랄 함성으로 시작한다. 오락 프로그램 진행이 한창인 스튜디오에는 관객이 FD의 주문 아래 계산된 함성을 지르고 있고, 영화는 이를 1초 간격으로 짧게 편집해 보여준다. 이 함성은 이후 정체 불명의 소음이 되어 계속 스크린을 서성거리는데, 이는 주인공 남자 피에르의 일상을 쉬지 않고 따라다니는 환청이다. <히어로즈>는 코미디언 피에르의 납치사건을 소재로 했다. 사람들을 웃기고, 웃기기 위해 궁리하고, 그게 자신의 직업임에도 이 사실에 부담을 갖는 피에르. 6일이나 잠을 자지 못한 어느 날 그는 인내심을 넘어선 스트레스를 납치로 푼다. 평소 자신이 흉내내기도 했던 가수 클로비스 코스타를 어릴 적 살던 아파트에 가둔다. 영화는 이후 아파트에서 갈팡질팡하며 자신의 과거와 부딪히는 피에르의 모습을 보여준다. 브뤼노 메를 감독은 아파트 밖의 세상을 파란 바다로 둘러 피에르란 남자의 인생을 압축해 표현하는데 그 느낌이 몽환적이다. 영화 초반에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 중 “미디어는 바리케이드”란 구절은 피에르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낸다. 감독이 공동각본가인 에마뉘엘 데스트르모와 4년 동안 매만진 시나리오답게 현실과 피에르의 혼란을 오가는 이야기의 전개가 탄탄하다. 2007년 칸영화제 감독주간 오프닝 작품.

왈츠 The Waltz 살바토레 마이라 | 이탈리아 | 2007년 | 87분 | 세네피아 08

87분 전체가 하나의 시퀀스다. 공간은 여자주인공 아싼타가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는 호텔. 카메라는 세미나가 열리는 컨퍼런스룸부터 호텔 주방, 복도와 지하실까지 화면을 이어간다. 이야기는 딸 루치아를 찾아 호텔에 온 남자가 아싼타에게 딸의 과거를 물으며 추적하는 내용. 루치아의 사연은 물론, 아싼타, 그리고 루치아, 아싼타와 함께 일했던 팔레스타인 웨이트리스 파티마의 과거도 함께 드러나는데 영화는 여기서도 컷을 나누지 않는다. 아무렇지도 않게 카메라의 방향을 조금 틀어 과거의 사연을 늘어놓는 식이다. 영화는 루치아 대신 편지를 써 루치아의 집에 보내곤 했던 아싼타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과정과 축구시합 관계자들의 권력 싸움, 레스토랑을 하나 열어주겠다며 작업을 거는 호텔 매니저의 모습을 동시다발적으로 훑어낸다. 지속적으로 흘러나오는 왈츠 음악이 각각의 인물을 소재로 하나의 건축을 쌓아가는 느낌을 주며, 시간을 오가며 이어지는 인물들의 각기 다른 사연은 유려한 카메라로 매끈하게 이어진다.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살바토레 마이라 감독의 2007년작. 주연배우 발레리아 소라리노는 루치아의 삶, 아싼타의 삶, 그리고 그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까지 입체감있는 연기를 원만하게 소화했다.

트레이시 파편들 Tracey Fragments 브루스 맥도널드 | 캐나다 | 2006년 | 90분 | HD 초이스

<주노>의 엘렌 페이지가 커튼만 두른 채 버스에 타고 있다. 욕설이 섞인 말을 혼자 중얼거리고 카메라를 향해 눈을 치켜뜬다. 스스로를 강아지라 믿는 동생 써니를 찾아나선 트레이시는 버스 안에서, 길 위에서 다양한 일을 겪으며 자신을 돌아본다. 기발한 발상의 단편영화로 캐나다에선 꽤 유명한 브루스 맥도널드 감독은 트레이시의 여정을 대여섯개의 프레임으로 나누어 구성한다. 화면이 위아래로 나뉘기도 하며 양옆에서 갈라지기도 한다. 이 같은 화면분할은 주로 트레이스의 혼란한 내적 상황을 표현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가끔은 플래시백 기능을 해낸다. 가령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남자”를 포착했을 때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영상은 작은 조각이 되어 길을 가는 트레이스의 옆에 따라붙고, 과거 부모에 대한 기억은 머리 위의 말풍선처럼 독립된 프레임으로 재연된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 부모와의 갈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파편처럼 뒹굴며 서로 섞인다. 화면분할이 효과적인 장면도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바람에 산만한 느낌도 준다. 긍정적인 태도로 현실에 대처했던 <주노>와 달리 혼란을 그대로 토해내는 엘렌 페이지의 연기가 인상적인 영화.

시녀들 Las Meninas 이보르 포돌착 | 우크라이나 | 2008년 | 99분 | 오버 더 시네마

<시녀들>의 감독 이보르 포돌착은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걸까. 모호하다. 그리고 모호한 게 이 영화의 야심이다. 그는 영화가 설명되는 이야기여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대신 그는 영화가 증명하는 것, 경험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가 증명하고 경험시키려는 건 이 세계에 정해진 것은 없다는 명제다. 그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스토커>를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고,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엥바드에서>를 자기 방식대로 만들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회화처럼 아름다운 화면, 정원에 앉아 노부부가 이런저런 그러나 의중을 알기 어려운 대화를 나눈다. 그런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간 영화는 형상의 미로 게임을 시작한다. 여기는 방이며 아버지, 어머니, 딸 그리고 종종 출몰하는 미지의 남자(아들일 공산이 크다)까지 포함하여 현란한 이미지 놀이를 한다. 동일한 상황과 행동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인물은 수시로 바뀌고, 숏이 바뀔 때 배우들은 일부러 틀린 동선에 가 있고, 방 안의 집기들도 수시로 변한다. 감독은 이 방 안을 카오스의 우주, 가능성의 우주로 그리고 싶어한다. 우크라이나의 비주얼 아트 예술가 이보르 포돌착의 데뷔작인데, 성긴 감이 있지만 야심차다.

레몬 트리 Lempn Tree 에란 리클리스 | 이스라엘 | 2008년 | 106분 | 오버 더 시네마

이스라엘 국방장관과 한판 붙는 팔레스타인 여자가 있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감독 에란 리클리스의 <레몬 트리>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같은 이야기다. 몇대에 걸쳐 레몬 농장을 운영해온 집안의 딸 살마는 어느 날 갑자기 옆집으로 이사 온 이스라엘 국방장관 때문에 당혹스럽다. 이스라엘 안보국이 레몬 농장이 장관에게 위협이 된다며 레몬 나무를 모두 뽑겠다고 통지해왔기 때문이다. 살마는 변호사를 고용해 이스라엘 안보국을 고소하고 법적으로 대응한다. 영화는 적대관계인 두 나라가 이웃이 될 수 있을지를 한 여인의 에피소드를 통해 고찰하는데 레몬 농장에 대한 여인의 집념은 팔레스타인 국가의 종교적 신념을 떠올리게도 한다. 묵묵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여인과 그녀의 태도를 위협이라 받아들이는 이스라엘 안보국. 영화 전체가 현실 정치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또 에란 리클리스 감독은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아내 미라에게 자신의 시선을 투영한다. 남편의 강력한 태도와 달리 살마에게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는 미라는 진보적인 이스라엘 지식인들의 반성을 대변한다. 다소 도식적인 구도의 이야기와 교훈적인 메시지가 진부하긴 하지만 영화는 2008년 베를린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저스트 어바웃 러브? Just about Love? 롤라 드와이옹 | 프랑스 | 2007년 | 82분 | 프랑스영화 특별전

<아메리칸 파이>도 프랑스로 건너가면 다르다? 롤라 드와이옹 감독의 <저스트 어바웃 러브?>는 동정을 떼려는 다섯 남녀의 이야기다. 절친한 친구 사이인 줄리와 엘로디는 여름방학이 시작하기 전까지 섹스를 경험해보자며 머리를 맞댄다. 직업 훈련을 받으며 남자와 여자를 탐하는 둘. 여기에 다른 세 친구가 더해져 이들의 프로젝트는 커진다. 하지만 <저스트 어바웃 러브?>는 섹스에 실패하길 거듭하며 벌어지는 질퍽한 10대들의 충돌담이 아니다. 줄리와 엘로디는 의외로 빨리 첫 경험에 성공하고, 나머지 셋도 순조롭게 ‘동정 떼기’에 접근해간다. 다만 이들의 문제는 섹스를 넘어선 감정. 친했던 친구가 자신이 찍어놓은 남자와 키스를 하고, 편하게 지냈던 친구가 섹스 이후 사랑의 감정을 고백해오면서 다섯 청춘은 흔들린다. 롤라 드와이옹 감독은 코믹한 섹스 에피소드 대신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10대 청춘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매우 프랑스적이지만 10대에 대한 투명한 보고서처럼 완성된 영화는 섹스코미디 이상으로 만국 공통의 정서를 포착한다. 2008년 프랑스 세자르상 경쟁부문 상영작이며, 연출을 맡은 롤라 드와이옹 감독은 <라자> <그녀는 햇빛 아래서 그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자크 드와이옹 감독의 딸이다.

작은 신들 Small Gods 디미트리 카라카차니스 | 벨기에 | 2007년 | 90분 | 세네피아 08

의사가 아닌 한 남자가 병실에 들어가 환자를 데려간다.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엘레나는 그 남자, 데이빗에게 끌려 어딘가를 간다. 디미트리 카라카차니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작은 신들>은 엘레나의 영문 모를 여정을 담은 영화다. 데이빗과 엘레나, 봉지에 담긴 인형을 품 안에 안고 있는 여자 사라 등이 함께 길을 가며 서로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영화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엘레나가 변호사에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하며 진행되는데, 그 사이사이로 과거의 기억이 플래시백된다. 초현실적인 단편 <가이드>로 주목받은 디미트리 카라카차니스 감독은 <작은 신들>에서도 벨기에의 시골 풍광을 음울한 선율과 함께 담는다. 어딘지 모르고 흘러가는 엘레나 일행의 길은 어둠에 잠긴 미로 같고, 엘레나 일행이 길을 가는 중에 만나는 사람들은 수수께끼 같은 대사와 사연을 남긴다. 전체적으로는 엘레나와 변호사의 대화로 묶인 이야기지만 계속되는 플래시백과 아무렇지도 않게 인물의 사연을 툭 던져넣는 편집은 영화에 기묘한 리듬을 불어넣는다. 2007년 플랑드르국제영화제에서 젊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07년 베니스영화제 상영작이다.

안달루시아 Andalucia 알랭 고미 | 프랑스 | 2008년 | 90분 | 프랑스 영화 특별전

알랭 고미 감독의 장편 <안달루시아>는 간단히 말해 길 잃은 남자의 자아찾기 이야기다. 관광 가이드나, 유치원 보조교사, 캠프 상담이나 식당 서빙 등을 하며 하루하루를 적당히 보내고 있는 남자 야신은 프랑스에 사는 아랍계 이민자다. 그는 나이가 서른이 넘었음에도 집도, 차도, 애인도 없으며 자신이 무엇을 하면 좋을지 확신도 없다. 세네갈 출신의 알랭 고미 감독은 위치를 잃어버린 남자의 혼란을 사실감있게 그려낸다. 야신은 눈을 뜨고 밖에만 나가도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자신의 모습에 괴로워한다. 번듯한 직장을 잡은 어릴적 친구들과의 재회도 반갑지 않다.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야신의 잦은 클로즈업은 야신의 상황을 드러내는 직접적인 컷이다. 야신은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라 자주 달리고, 영화는 그 상황을 그대로 쫓아간다. 이주민들의 정체성 혼란은 이미 많은 영화가 반복해온 주제지만 주인공의 행동을 세밀히 관찰하고 이를 극화해 표현해낸 방식은 좀더 본질적인 의미에서 질문을 던진다. 이질적인 공간에 익숙해지는 것, 이질적인 문화를 습득하는 것이 실제로 어떤 과정인지 알랭 고미 감독은 매우 예민한 촉수로 감지해낸다.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 야신을 탁월하게 연기한 사미르 궤스미는 2007 나무르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카틴 Katyn 안제이 바이다 | 폴 란드 | 2007 | 118분 | 오버 더 시네마

데뷔작 <제너레이션>(1955)에서 <카날>(1956), <재와 다이아몬드>(1958)까지 영화사의 고전으로 기록된 초기 세편의 영화에서 안제이 바이다는 2차 세계대전과 폴란드의 역사에 대해 애끓는 심정으로 다루었다. 몇 십년이 흘렀지만 안제이 바이다는 아직도 청산할 일과 말할 것이 남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카틴>은 폴란드 병사들이 죽어간 포로수용소 카틴에 대한, 그곳에 끌려간 한 남자에 대한, 그리고 그의 생사를 모른 채 기다렸던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게 폴란드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피난길, 다리 위의 사람들. 앞쪽에서는 소련군이 몰려온다고 하고, 뒤쪽에서는 독일군이 몰려온다고 한다. 폴란드 사람들은 우왕좌왕한다. 그 무리 안에 어린 딸을 이끌고 잔뜩 겁을 집어먹은 한 여인이 있다. 이날이 1939년 9월17일, 이미 들어와 있던 독일에 이어 소련이 침공한 날이다. 그리고 그날이 그녀가 남편과 이별한 날이다. 영화는 한편으로는 이 여인의 일생을, 또 한편으로는 포로수용소로 끌려간 남편의 투쟁을 동시에 따라간다. 마침내 시간은 흐르고 폴란드는 해방된다. 그녀의 남편은 돌아올 것인가. 전반적으로 영화는 고요하지만 첫 장면의 하늘과 마지막 장면의 땅이 이 영화가 안제이 바이다의 영화임을 힘 있게 알려준다.

에그 Egg 세미 카플라노글루 | 터키, 그리스 | 2007 | 97분 | 국제경쟁부문:세네피아08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이스탄불에서 조그만 헌책방을 운영하며 시도 쓰는 유수프는 몇년간이나 고향을 찾지 않았고 어머니의 죽음도 가장 늦게 알게 됐다. 아들은 괴롭기 짝이 없다. 그런데 고향에 도착했을 때 그가 알게 된 첫 번째 사실은 어머니가 친척 소녀 아일라와 함께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는 점이며 그 아일라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평소 어머니가 숫양을 신께 제물로 봉헌하기를 원했었다는 사실이다. 아일라는 유수프가 그걸 어머니 대신 해야 한다고 넌지시 일러준다. 유수프는 처음에 봉헌 의식을 대신하는 걸 원치 않지만 결국 하기로 마음먹는다. <에그>는 바로 그가 어머니가 세상에 남겨놓고 간 빚, 봉헌의 길을 떠나는 여행이다. 이 영화는 산자의 마지막 모습(멀리서 카메라 앞까지 힘겹게 걸어오는 어머니)이 첫 장면으로 등장하고, 나머지는 모두 그를 떠나보내는 의식을 거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종일관 천천히 흐르는 화면이 풍경을 꼼꼼하게 잡아내고 대사는 많지 않지만 인물들의 감정은 대체로 무거운 침묵과 성스러운 표정으로 드러난다. 확실히 영화는 현재 누리 빌게 세일란으로 대변되는 터키영화의 한 전통 안에 있다. 감독 세미 카플라노글루는 <에그>를 삼부작 중 첫 번째로 생각하고 있으며 남아 있는 두개의 프로젝트는 ‘밀크’와 ‘허니’다.

※ 영화제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