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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기자가 되면 그 다음은?
구혜진 2008-06-13

손예진 ‘기자’가 등장하는 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가 방영하면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문의가 빗발친다. “하루 몇 시간이나 자?” “주말에 모임 있는데 넌 나오기 힘들겠다?” 등등 그들은 눈을 반짝이며 ‘너 정말 TV처럼 살고 있니’란 신호를 보낸다. 드라마는 사회부를 배경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내 생활과는 조금 거리가 있긴 하지만, 어쨌든 종종 끼니를 못 챙길 만큼 바쁜 것은 맞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기자란 이름을 달고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일년은 정말 어땠는지.

질겅질겅 펜을 씹으며 V.O.S의 새 노래 <Beautiful Life>의 볼륨을 높인다. 경쾌하게 진행되는 노래에 맞춰 펜을 씹는 속도도 빨라진다. 내 인생은 과연 뷰티풀한가에 관해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아리송하다. 어제 모처럼 타사 선배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야기의 주제는 기자란 직업의 고단함쪽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다들 아이템 고민에 넘치는 일정으로 빡빡한 하루를 보내면서 꿈에서까지 인터뷰를 할 정도라니 말 다 했다. 기자여서 좋은 경우도 물론 있다. 10년 전 다이어리에나 꼭꼭 적어뒀던 스타와 대면하는 순간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일로 부딪치는 관계에서 오는 삭막함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내 경우는 글을 쓰는 게 두렵다는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던 대학 시절, <씨네21>은 여러 스터디 그룹들의 필독서였다. 문장을 꼼꼼히 탐독하고 필사까지 해가며 맛깔난 글쓰기 방법을 배우려 들었다. 졸업하고 나서도 자주 학교를 찾곤 하는데, 요즘 후배들을 봐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게다가 최근 인터뷰했던 ‘DJ 희열님’은 놀랍게도, 내가 몇 페이지에 어떤 내용의 기사를 쓰는 기자란 걸 정확히 꿰고 계셨다(!!). 조금 괘씸한 상황이긴 하지만, 한 친구는 한밤에 느닷없이 전화를 걸더니 “자장면 먹고 있는데, 밑에 깔린 게 네 기사야”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찔한 순간은 이후에도 몇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씨네21>이 주는 무거움에 대해 느끼게 된다. ‘재미’와 ‘의미’ 사이에서 재미쪽에 더 기대를 걸고 시작한 직업이지만, 이제는 후자쪽으로 무게중심을 조금씩 옮겨야겠다는 생각이다. 마음에서는 잘하고 싶은 욕구가 커져만 가는데 아직은 깜냥 부족에 이리 비틀, 저리 비틀거리고 있지만 말이다.

1년 전에는 일단 기자가 되기만 한다면 참 행복하고, 세상을 다 얻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 새로운 고민에 직면한 내 모습과 최근 사의를 표명한 최송현 KBS 아나운서를 지켜보면서 인생은 등산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일단 정상에 오르면 다음 과정은 순탄한 등산과는 달리 인생은 목표에 도달해도 다음 클리어 대상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든지 고민의 총량은 같을지 모른다. 현재의 무게에 치이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또 다른 꿈을 꿔야 한다. 진행형의 꿈이 있는 이상 광우병 이상으로 무서운 무기력증에는 빠지지 않을 테니까.

기사를 쓸 때는 남의 이야기를 전달하면 됐지만 올곧이 내 이야기만으로 분량을 채우려니 꽤 힘이 든다. 헥헥.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 의미가 있을지 없을지 판단이 당최 서지 않는 상황에서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예쁘게 봐주세요~”쯤이겠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