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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미친 영화를 위하여

타이영화를 보며 한국에선 왜 미친영화를 만들지 못하는지 생각하다

최근에 미친 타이영화를 봤다. 주인공은 완벽하게 잘 움직이는 팔 세개를 갖고 있는 남자다. 그는 완벽한 배구 선수에다가 마을 우체국에서 일할 땐 누구보다도 빨리 우편물을 분류한다. 그러나 역시 팔 하나가 더 있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서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방콕으로 길을 떠난다. 할리우드영화에서라면, 여행하는 와중에 그는 타인들과 다른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고는 나머지 팔을 자신만이 받은 특별한 선물이라 귀중하게 여기게 될 테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팔을 잘라내버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콩데이 자투라나사미가 감독한 <핸들 미 위드 케어>(Handle Me with Care)라는 제목의 이 영화에는 CG 이미지나 고도의 모형물 따위는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이 감독은 그냥 다른 사람을 배우 뒤에 세우고 한쪽 팔을 내밀게 했다. 누가 영화를 보든 이건 너무 아마추어 같다. 도대체 이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한 건가? 미쳤음에 틀림없다.

타이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타이영화 중 이런 유의 미친 영화가 많다는 것은 안다.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영화도 마찬가지다. 미친 영화는 예상하기가 불가능하다. 자의식이나 부끄러움 같은 것은 조금도 없는 것 같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 아무 목적도 없고 완전히 제멋대로다. 그러나 뭔가 어긋난 이미지와 상식, 논리 따위는 무시한 앞뒤 맥락 안 맞는 내러티브가 들판을 가득 채운 양떼 속의 말 한 마리처럼 서 있는데도, 나름 영화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

한국 영화감독들은 노력하더라도 미친 영화를 만들 수 없다. 창의적이고 놀랍고 혁신적이고 인상적이며 초현실적인 영화는 만들 수 있을 테지만, 미친 영화는 만들 수 없다. 창의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한국영화에 널리 퍼져 있는 ‘제대로 된 모양새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미친 영화를 못 만들게 하는 것 아닐까? 산업적인 차원에서 질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억압 같은 것이 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조차도 요새는 예상 가능하다. 100만번을 시도해도 한국 감독들은 <핸들 미 위드 케어>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미친 영화는 돈을 못 번다. 칸영화제에도 초대되지 않는다. 대개 미친 영화들은 아주 좋다기보다는, 흥미롭거나 절대 잊혀지지 않는 편이다. 습득하거나 규정하기 어려운 이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미친 영화 제작 워크숍을 열어야 한다고 한국 영화학도들에게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이 왜 미친 영화를 만들 수 없는지 내가 이해할 수 있다면, 현대 한국영화의 근본적인 특성을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내 고국인 미국 역시 미친 영화를 만들지 못한다. 큰 스튜디오들은 그런 취향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고 독립영화 감독들은 그런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만들지 못한다. 그들은 스타벅스에 앉아서 황당하고 엽기적인 장면과 상황들을 컴퓨터로 쓰고 있지만, 머리 속으로는 선댄스에서 웃어줄 관객을 내내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진짜 미친 영화는 관객의 주목도 끌려고 들지 않는다. 그런 건 상관없는 것이다. 한국도 미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때가 있다. 한국영화 중에도 한쪽 팔을 잃는 영화가 있었으니, 바로 김호선의 <영자의 전성시대>(1975)다. 영자는 버스 안내원으로 일하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한다. 팔이 떨어져 나가 공중에 건물 4층 높이로 날아가오른다. 아마도 마네킹의 팔에 빨간 페인트를 뿌려서 공중에 실을 매달아 당겨올린 것으로 보인다. 팔 한쪽이 하늘로 그렇게 솟구쳐 오르는 것을 지켜볼 때 영자는 살짝 미소짓는 듯하다. 이건 미친 영화다.

번역=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