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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스토리] TV 속 착한 광고 세상

TV 광고의 심의를 둘러싼 이야기들

“비키니- 터치~.” 싸이언의 비키니 광고가 방송됐을 때 주변에서 들은 가장 많은 이야기는 “이 광고, 어떻게 심의가 통과된 거지?” 였다. ‘좋다’ 혹은 ‘지나치다’ 등 의견이 다 다르겠지만 이 광고에 대한 논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심의’다. 대한민국에서 지상파TV와 케이블·위성TV에 집행되는 광고는 모두 광고자율심의기구에서 사전심의를 거쳐야 한다. 각계 전문의원(소비자단체, 국문학자, 광고학 교수 등)들이 선정성, 폭력성, 과장광고 여부, 외국어의 무분별한 사용 여부 등을 세부적으로 심사한다. 인쇄 광고물은 품목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사후심의라서 누군가가 그 광고물에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집행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전심의를 받는 방송광고는 그 심의 결과에 따라 애써 만들어놓은 광고물이 아예 집행이 불가할 수도 있고,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수정되는 뼈아픈 일들도 겪게 된다.

여러분이 안방에서 보는 광고물은 일단 ‘보편적인 국민정서’를 감안해 잘 걸러져 나온 광고물이므로 적어도 위해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심의라는 것이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늘 칼로 자르듯 명확할 수는 없어서 매번 받지만 매번 어려운 관문이다. 따라서 심의과정을 둘러싼 사연들도 많다. 한 세제 광고를 담당했던 광고기획자(AE)는 심의실에서 효과를 시연해서 증명해 보이라는 요청이 있어 직접 심의의원들 앞에서 빨래를 하기도 했단다.

앞서 말한 싸이언 비키니폰의 경우 제작단계부터 선정성 문제를 고려해 여러 수위로 많은 컷을 찍어놓았다가 심의결과를 보고 다소 수위를 높여서 집행한 경우다. 심의도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의 변화를 따르기 때문에 그 정도가 완화되거나 강화된다. 요즘 여름을 겨낭한 상품광고들에서 심심치 않은 노출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방송에서 분유광고를 본 적 있는가? 있다면 거짓말이다. 여러분이 분유광고라고 본 광고들은 모두 이유식(성장기용 조제식) 광고들이다.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방침이기 때문에 조제분유, 조제우유, 젖병, 젖꽂지는 방송광고를 할 수 없다. 당연히 담배나 흡연 관련 광고도 방송광고를 할 수 없고 먹는 샘물은 지상파 방송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수도물을 식수로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쉬앤캐쉬 같은 대부업은 국민정서 때문에 지상파 방송광고가 금지되기 때문에 케이블TV에서만 집행한다.

무엇보다 엄격한 심의규제 영역 중 하나는 ‘어린이 상업문’ 표현이다. 어린이가 상품과 관련된 상업문이나 광고 노래, 또는 제품의 특징을 전달하는 표현은 금지되어 있다. 그래서 광고물을 보면 어린이가 그 상품명을 직접 이야기하거나 상품이 좋다는 표현은 절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어린이는 주변적인 이야기를 하거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으로 제품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한다. 어린이의 상업적 이용을 막는 취지다. 달리는 차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장면도 방송할 수 없다. 방파제 위 포장마차신을 촬영했다가 방파제에서는 상행위가 금지돼 있다는 이유로 방송불가 판정이 났고 결국 컴퓨터그래픽으로 바다를 다 메워버린 일도 있었다.

이처럼 철저한 심의 규제 때문에 방송광고 속 세상은 참으로 ‘착한 세상’이다. 지나친 폭력도, 선정적인 표현도, 욕설도 없는 세상. TV드라마에 등장하는 그 흔한 키스신도 방송광고에서는 불가능하다. 키스신을 표현하려면 결정적 순간은 주변의 소품들이 가려주는 등 교묘하게 감추는 트릭을 써야만 한다.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 직전까지만 보여주든가. 드라마에서 종종 화제가 되는 격정적인 베드신은 광고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다. 가장 트렌디하다고 이야기하는 광고가, 실은 가장 순수한 영역인 셈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