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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한국영화] 이경미 감독이 말하는 <홍당무>
주성철 2008-06-20

질투는 나의 힘

이 여자 난감하다. 러시아어 교사 양미숙(공효진)은 천하의 ‘삽질 여왕’이다. 게다가 툭하면 얼굴이 빨개지는 안면홍조증은 완전 대박이다. 그런 홍익인간인 그가 짝사랑하는 동료이자 심지어 유부남이기까지 한 서 선생(이종혁)의 또 다른 연애(그러니까 바람?)를 막기 위해 발벗고 나선다. 아버지의 불륜으로 인한 부모의 이혼을 원치 않는 서 선생의 딸이자 교내 ‘왕따’인 서종희(서우)도 그 작전에 합세한다. 그렇게 미숙과 종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연애를 방해하기 위해 갖은 술수를 써서 달려들지만 당최 일은 쉽게 풀리지 않고 꼬여만 간다. 이거 참 요상한 동맹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가슴이 아니라 정신이 아픈 선생과 철부지 학생은 얼떨결에 손을 잡지만 애쓰면 애쓸수록 사건은 더 꼬여만 간다. <홍당무>의 재미란 그런 것이다. 세상 모든 일이란 게 노력한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현재 후반작업 중인 <홍당무>는 박찬욱 감독이 대표로 있는 모호필름에서 그가 연출자가 아닌 제작자로 크레딧을 올리는 첫 번째 작품이다. 단편 <잘돼가? 무엇이든>(2004)으로 미쟝센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이경미 감독은 이후 <친절한 금자씨>(2005)의 스크립터를 맡기도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데뷔작으로 이 당돌하고도 유쾌한 이야기를 쓴 주인공도 이경미 감독 자신이다. 그러니까 영화의 처음과 끝 모두에 그의 숨결이 배어 있다. “스크루볼코미디 장르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캐릭터만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에 관심이 많았고, 그러면서 별것도 아닌 작은 것으로부터 사건이 커져서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그렇게 쉬지 않고 대사들이 오가며 좌충우돌하는 가운데 끝까지 재미있게 끌어가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계약하고 무려 5개월여 동안 모니터에 커서 깜박이는 것만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마구잡이로 영화를 보면서 감을 잡았고, 끝내는 좁은 튜브에 내 몸을 우겨넣듯 꾸역꾸역 시나리오를 써나갔다.” 이후 박찬욱 감독의 날카로운 지적을 접하며 20고 가까이 다양한 버전들을 만들어냈다.

이경미 감독이 말하는 <홍당무>의 핵심 정서는 ‘질투’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에서 ‘짝사랑’이라는 지옥 같은 감정의 다른 말이다. “질투라는 감정이 참 치열하더라. 그냥 ‘안 보면 그만’이라 생각하는 것들에도 사람들은 참 많은 에너지를 쏟아붓는다”며 “그런 인간들이 치열하게 싸우는 난투극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촌스러운 감정의 바닥까지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미숙이 학교 선생으로서 차마 해서는 안 될 우스꽝스런 짓을 하고, 본의 아니게 삽질하며 한없이 망가지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서 역시 가장 기대를 갖게 되는 배우는 공효진이다. 지금껏 특별히 ‘원톱’ 주인공으로 활약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면 <홍당무>는 그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다. 이경미 감독은 “진정으로 코미디가 되는 배우다.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 모습들이 나와서 신기했다”며 “너무 웃겨서 심지어 자제시켜야 할 정도였다”고 귀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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