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PIFF Daily > 6회(2001) > PIFF 2001
[인터뷰]“내 영화가 너무 어두워? 다른 영화를 보렴”
2001-11-12

<거기는 지금 몇 시니?>들고 부산 찾은 차이밍량 감독

대만 감독 차이밍량은 영화특구 부산의 단골 게스트로, 이곳에는 언제나 그를 열렬히 사랑하는 한국관객들이 기다린다는 걸 이미 안다. 그에 대한 답변인듯, 그는 자신의 신작 <거기는 지금 몇 시니?>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기도 전에, 최근 한국 영화의 이상기류를 짚고 싶어했다. 그는 지난 1년간 한국 영화산업의 성장을 지켜보며 “한국 영화의 목표가 다름아닌 헐리우드 영화였음을 알게 됐다”며, “흥행작들을 무조건 비판할 생각은 없으나, 흥행만이 능사라는 생각이 한국 감독들 사이에도 팽배함을 느꼈다”며 아쉬운 상실감을 토로했다.

지난 해 PPP에 출품됐던 <흑안권>을 완성해 올 줄 알았다

PPP에 출품될 당시 <흑안권>은 시놉 단계였다. 미라맥스와 일본의 제작자들이 관심을 나타내긴 했지만, 구체적인 계약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 후 유럽 쪽에서 합작을 제의했고, 결국 프랑스와 함께 제작하기로 했다. 아마도 내년 말쯤 촬영에 들어갈 것이다. 주인공은 역시 이강생이다. 그는 여기서 천대받는 동남아 노동자를 연기할 것이다.

올해 들고 온 <거기는 지금 몇 시니?>를 말한다면.

어느 날 ‘현실이란 게 뭘까’하는 질문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시간, 다시 말해 ‘여기’ 그리고 ‘지금’이 현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각자의 현실은 다 틀리지 않은가. 사람들은 다들 자신의 기억 속에서 현실을 사는 것 같다. 기억이 바로 존재인 것이다. 이 영화는 그에 대한 얘기다. <거기는…>의 시나리오는 <구멍>이 만들어질 때부터 이미 쓰여 있었다.

언제나 대만 사회의 어두운 면을 담아내는데.

내가 카메라에 담는 것은 ‘대만’만이 아니다. 그건 지금 우리가 발딛고 있는 ‘부산’이고, 내가 태어난 말레이시아의 깡촌 ‘쿠치’이고, 당신이 태어난 도시다. ‘지구의 어느 곳이든’이라고 해야 더 정확한 대답이 되겠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눈물로 이루어진 견고한 성이다. 그 아픔과 소외감을 얘기하고 싶었을 뿐이지, 대만의 어두운 면을 폭로하고자 한 건 아니다. 그리고 내 영화가 너무 어둡게 느껴진다면, 다른 감독의 밝은 영화를 보라. 나의 작품에는 없는 점들을 지닌 영화들 말이다.

당신의 페르소나인 배우 이강생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음… 무슨 얘길 해도 그는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웃음) 이강생은 나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나는 충동적이고 급한 반면, 그는 굉장히 차분하고 신중하다. 영화를 찍을 때도 난 “그냥 이렇게 가자”고 하고, 그는 “그래도 한번 더 해보자”고 한다. 물론 그의 앞에서는 내 뜻대로 밀고 나간다. 하지만 집에 들어가선 언제나 그의 결정이 옳았음을 인정하게 된다. 또 그에게선 특유의 차가움과 무심한 분위기가 느껴지곤 하는데, 그 분위기가 내 작품과 잘 맞아 떨어진다. 현대인의 냉소가 느껴진다고 할까. 그렇다고 한 가지 색깔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어떤 배역에서건 자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그의 장점. 10년차 배우가 카메리 앞에서 연기의 옷을 벗는다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니까.

한국은 현재 때아닌 자국영화 특수를 누리고 있다. 대만의 관객들의 자국 영화 소비도는 어떤가.

사실 얼마 전 어떤 한국의 여감독에게서 똑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요즘은 한국영화를 볼 시간이 별로 없지만, 흥행작 소식을 듣는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던 차였다. 한국영화가 볼거리가 풍성해졌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를 흉내내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한국인이 만들어내는 영화가 할리우드 제작자가 만든 것과 똑같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 크기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날카로운 비판정신과 창조력이 결여된 영화가 결국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되는지는 홍콩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지 않나. 아, 대만 얘기였지. 대만의 관객들은 대만 영화에 인색한 편이다. 하지만 나도 그렇고, 대만의 감독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우리는 관객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은 거다. 다양하면서도 질적으로 알찬 작품으로 승부를 걸 때 영화(映畵)의 영화(榮華)는 계속될 것이다.

심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