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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뒤늦은 성장통
강병진 2008-07-25

난생처음 대출 상담이란 걸 받아봤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집을 좀더 좋은 곳으로 옮겨보려는 단순한 요량이었는데, 상담 뒤의 내 기분은 역시나 심란했다. 상담에 응한 은행원은 “근로자·서민대출이 이율도 싸고 좋다”고 말했다. 내가 근로자이자 서민이라는 사실이 생경했다. 게다가 수입이 특정금액 이하(!)여야만 하고,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어야 한다는 대출 자격요건에 내가 딱 맞는다는 사실도 기쁘게 들리지 않았다. 내 직장과 연봉, 근무연차들을 털어놓고 그것을 분석한 은행원의 답변을 들으면서 나만 자각하기 어려웠던 내 자신이 오롯이 드러났다. 그러니까 이 사회에서 저의 위치는 이곳이군요. 네, 당신은 직장을 다니며 나이든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는 서른살의 대한민국 남자예요. 적어도 은행의 전산망과 내규에 따르면 근로자이자 서민인 거죠.

평소 은행 대출에 대해서는 비호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과 동시에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행복한 신혼생활을 축복해주기보다는 “그거 언제 다 갚으려고?”라는 질문을 먼저 했었다. 당시 친구는 대출을 받는 게 저축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나는 녀석이 나와는 아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남자처럼 보였다. 결혼도 했고, 대출도 받고, (속도위반으로)7개월 뒤면 아이까지 생길 녀석은 이제 대출 인생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샐러리맨이고, 나는 아직 어딘가 얽매일 일도, 얽매일 필요도 없다고 말이다. 매주 마감에 치여 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에게 은행 대출은 음주와 흡연보다도 더한 노화의 지름길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은행원이 내뱉은 ‘근로자’라는 말에 당황한 것이다. 그 말에서 비하적인 의미를 느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그 단어에 섞인 ‘돈 버는 성인’이라는 느낌에 적잖이 실망했다. 그러니까 만약 내가 이 대출을 받을 경우, 나는 진정한 ‘근로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빼도박도 못하는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출금을 갚기는커녕 대출이자를 막는 데 급급한 30대 직장인 싱글남성이다. 흔히 들리는 샐러리맨들의 이야기처럼 매일같이 사표를 쓰면서도 대출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다음날 출근할 수밖에 없거나, 이자마저 제때 내지 못해 독촉전화에 시달리고 그러다 전화벨만 울리면 경기를 일으키는 모습이 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도 모르게 어느 은행 대출이 좋다, 나쁘다 등의 품평을 할 것이고, 카드를 긁을 때면 대출증서가 눈앞에 아른거릴 것이다. 그렇게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나니, 대출이라는 두 글자가 두려워졌다. 이사는 무슨…. 그냥저냥 살면 되지. 단순히 돈에 발목을 잡혀 살기 싫었던 게 아니라, 그런 식으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된 그 녀석은 그런 실망감을 너무 늦게 경험한 게 아니냐고 했다. 이미 내 또래의, 심지어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대출을 받고 이자를 갚아가며 살고 있다는 거다. 그래야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했다. 어렸을 때는 스무살만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는데. 스무살이 됐을 때만 해도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어른이 된다고 했었는데. 제대 뒤 복학과 졸업을 거쳤을 때는 취직을 해서 갑근세도 내고, 건강보험료도 내고, 국민연금도 내야만 어른이 되는 거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은행 대출이라니. 서른하고도 7개월이 된 시점에 겪는 뒤늦은 성장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