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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토종 괴수들이 몰려온다
이영진 2008-07-29

7월29일부터 8월5일까지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괴수대백과: 한국괴수가 온다’

“모형을 만들어가지고 특수촬영을 군데군데 끼워놓은 이른바 괴기영화 장르에 속하지만 무섭지도 오싹하지도 않은 어린이용 정도의 그저 그런 작품이다. 불가사리라는 한국판 킹콩이 고려 말엽 송도에 나타나 간신과 악당들을 쳐부순다는 야담조 이야기를 아주 설명적으로 펴나가는데 영화감각이나 연출수법이 이 (졸속 양산됐던) 사극처럼 낡고 또 진부하다. …(중략)… 용머리에 매단 줄이 보인다든가 앞을 못 보는 불가사리의 불안한 걸음거리 등은 관객을 웃겨준다.” ‘한국 괴수영화의 효시’라 꼽히는 김명제 감독의 <불가사리>(1962)에 대한 당시 반응은 만장일치 혹평이었다. 사극만이 유일한 스펙터클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1960년대 초, <불가사리>는 최초의 괴수물이라는 타이틀을 하사받는 대신 허무맹랑 삼류 오락물로 곧장 분류됐다. 관람시 유의사항으로 “상식과 당위성 따위는 전혀 생각지 말라”는 충고까지 더해졌다. 할리우드의 킹콩, 일본의 고지라와 달리 불가사리는 기술적 미숙함으로 코믹한 캐릭터의 전범이 됐다.

불가사리는 40여년이 지난 지금, 어떤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한국영상자료원이 7월29일부터 8월5일까지 8일 동안 여는 기획전 ‘괴수대백과: 한국괴수가 온다’는 한국 영화인들이 손으로 빚었던 토종 괴수들의 지난한 성장 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다. 맨 먼저 문을 여는 작품은 김기덕 감독의 1967년작 <대괴수 용가리>. “동양의 상징적 동물인” 용과 고유 전설 속 불가사리에서 힌트를 얻어 이름을 얻은 대괴수 ‘용가리’는 재일동포 이병우 촬영감독의 소개로 <고지라>를 만든 쓰부라야 프로덕션 등에서 일했던 일본 스탭들이 가세하면서 탄생했다. 조소와 비난의 대상이었던 조상 불가사리의 원수라도 갚으려는 심산인지, 용가리는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든다. 젊은 과학도와 그의 애인, 그리고 우주비행사가 괴수 용가리에 맞서 싸운다는 줄거리. 7월29일 상영되는 필름은 48분가량의 불완전판이다. 이것만으로 양이 차지 않는다면 미국에서 출시된 80분 분량의 DVD 버전 상영 및 김기덕 감독과의 대화 자리를 놓치지 말 것.

이번 기획전에서는 <대괴수 용가리>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어 아이디어 도용 등 논란을 빚기도 했던 권혁진 감독의 <우주괴인 왕마귀>(1967)도 상영된다. 지구를 침략하려는 감마성 괴인들이 결혼식을 앞둔 아내를 납치하자 공군 조종사인 남편이 이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는 내용이다. “주관객은 어린이들이야. …(중략)… 어른보다 어린이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 구성을 한 거지.” <대괴수 용가리>를 만들었던 김기덕 감독의 말처럼, <우주괴인 왕마귀> 또한 어른들은 모두 비겁하다며 괴수를 장난감 대하듯 여기는 거지소년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자식 손에 이끌려 극장 나들이에 나선 성인 관객을 위한 배려(?)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데, 여자의 속옷을 훔쳐보고 눈이 동그래지는 괴물이나 목숨을 부지하기 바쁜 혼란 속에서도 신문지 깔고 볼일 보거나 괴물이 을지로로 갈까요, 퇴계로로 갈까요 하며 마누라 걸고 내기하는 어이없는 타짜들도 등장한다. 괴물의 위력을 위협적으로 재현할 수 없음을 미리 알아차린 방비책이다.

1970년대에 모습을 드러낸 국산 괴수들은 형식이나 제작방식 면에서 눈여겨볼 만한 영화들이다. 용유수 감독의 <괴수대전쟁>(1972)은 애니메이션. 실사보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 자유롭기에 단순한 괴수들의 공습 외에도 새로운 행성을 발견한 핵보유국들의 경쟁, 국제범죄조직의 납치극 등을 집어넣었다. <킹콩의 대역습>(APE)은 최영철, 리더폴이라는 두 감독이 공동연출하고 이낙훈, 우연정, 로드 애런츠 등이 출연한 한·미 합작영화. 길이 10m의 발을 가진 육중한 고릴라가 등장하는데, 필름이 유실된 탓에 역시 북미에서 출시된 DVD로 상영한다. 호응이 많지 않았기에 1980년대에는 괴수물이 거의 자취를 감췄는데, <비천괴수>는 이 시기 나온 ‘유일 본격’ 괴수영화다. “1970년대 일본영화 <돌아온 울트라맨>의 괴수 등장장면과 한국 배우 촬영분을 짜깁기한” 이른바 ‘조각보’, ‘무국적’, ‘재활용’ 영화인지라 1960년대 나왔던 괴수물보다도 만듦새나 흥미가 더 떨어진다.

외려 눈여겨볼 만한 영화는 정건조, 신상옥 감독의 <불가사리>(1985)와 본격 괴수물이라고 분류하긴 어렵지만 “특수촬영이 돋보이는” <신서유기-손오공대전비인>(1982).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 머물 당시 공동연출자로 참여한 <불가사리>는 일본식 괴수물의 테크닉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이야기의 완결성이나 대규모 장면 연출만큼은 다른 괴수물들을 압도한다. 특히 쇠를 먹는 불가사리가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은 뜯어보면 꽤 의미심장하다. <신서유기…>는 당나라 고승 삼장법사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 세 제자와 함께 사술을 부리는 녹력과 양력을 물리치고 경문을 가지고 무사히 귀환한다는 이야기. 삐융삐융, 사운드 효과에 기댄 빈약한 변신술을 화려한 스펙터클이라고 부르긴 어렵겠으나 다양한 요괴 캐릭터들의 등장이나 공들여 만든 세트만큼은 인정하자. 이번 기획전에서는 김종성 감독이 <신서유기…>에 이어 만든 <손오공 홍해아 대전>(1985), 괴수 사랑에 매달려왔던 심형래 감독의 <티라노의 발톱>(1997)과 <디 워>(2007),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도 함께 상영될 에정이다. 관람료는 무료. 상영관은 서울 상암동 DMC단지 내 시네마테크 KOFA(상영일정: www.koreafilm.or.kr 문의: 02-3153-20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