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News > 국내뉴스
김기덕표 미녀와 야수 <나쁜 남자>
2001-11-13

지난 11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으로 베일을 벗은 김기덕 감독의 일곱번째 작품 <나쁜 남자>는 이를테면 `김기덕표 미녀와 야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야수가 미녀를 얽어매는 방식은 동화와 달리 극악하고 폭력적이다.

사창가의 깡패 한기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 여대생 선화의 말끔한 얼굴에 눈길을 빼앗긴다. 그러나 자신을 벌레 보듯 피하는 선화의 눈길이 그의 삶에 고여있던 분노를 폭발시킨다. 백주대낮에 선화에게 강제로 키스했다가 극심한 모욕을 당한 한기는 인신매매 조직의 수법으로 선화를 사창가의 창녀로 전락시킨다.

박탈감과 오기와 복수의식으로 똘똘 뭉친 듯한 존재인 한기는 매일 밤 비밀 유리를 통해 사창가의 선화를 감시한다. 선화는 사창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지만 폭력의 창살 밖으로 탈출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선화가 이 야수에게서 언뜻 인간의 얼굴을 느꼈을 때, 한기는 비로소 선화를 놓아주려 한다. 그러나 선화는 예전의 자신으로부터 이미 너무 멀리 떠나와 있다.

김 감독은 이 작품이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운명’ 이야기라고 말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과정을 거쳤든 운명은 자기도 모르게 결정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또 이 작품에 등장하는 극단적인 폭력을 일종의 ‘반추상’으로 보아달라고 주문한다. 그러나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기엔 등장인물들의 삶의 두께가 아직 얇은 듯하다. 김 감독은 자신이 만든 영화 가운데 “사실은 가장 끔찍한” 영화라고 말한다. 여대생을 창녀로 만든다는 설정 자체는 이미 충분히 끔찍하지만, 전작들에 비해 관객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김기덕 특유의 위악과 극단은 어딘가 약해진 듯하다.

부산/이상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