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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한 연출력, 벤 애플렉의 장편 데뷔작 <가라, 아이야, 가라>

<가라, 아이야, 가라>는 <미스틱 리버>의 데니스 르헤인이 쓴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누가 소녀를 죽였는지 파헤치는 <미스틱 리버>와 누가 소녀를 납치했는지 밝히는 <가라, 아이야, 가라>는 보스턴의 우울한 현대사(물론 허구다)와 사회 분위기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두 작품은 범인의 검거과정을 다룬 범죄스릴러라기보다 ‘왜’라는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회물의 성격이 더 강하다. 눈먼 주인공은 사건의 한가운데서 범인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헛되이 주변부를 두드리다 마침내 중심으로 복귀한다. 그즈음, 우리는 범인이 아닌 우리 자신의 모습, 사회의 실체, 범죄의 기원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금발 머리에 녹색 눈을 가진 4살 소녀가 집에서 사라진다. 경찰과 언론의 집중 수사와 보도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자, 소녀의 숙모와 삼촌은 사립탐정인 켄지와 제나로(연인이자 동료인 두 사람은 르헤인 추리소설의 단골 주인공이다)에게 사건을 의뢰한다. 딸의 행방에 관심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철부지 엄마를 만난 두 사람은 마약과 술에 절어 사는 그녀의 주변에서 경찰이 놓친 사실들을 주워 듣는다. 결국 유괴는 마약과 돈에 대한 욕망이 초래한 범죄로, 소녀는 사망한 것으로 처리되면서 영화의 전반부가 끝나버린다. 당황스럽다. 가난과 술과 마약과 로또에 저당잡힌 하층민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그러한 범죄는 계속될 거란 이야기인가? 영화의 전반부가 사건의 기록이었다면 후반부는 인물의 탐구다. 다시 소년 유괴사건에 엮인 켄지는 담당 형사와의 대화 도중 일단락된 이전 사건의 숨겨진 비밀을 눈치채고, 그 사건의 배후에 뜻밖의 인물들이 개입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하층민뿐 아니라 사회도덕의 기반을 형성하는 집단과 최선의 행동을 도모했던 사람들까지 싸잡아 불러모은 뒤 ‘당신의 선택에 대해 숙고해보라’고 주문한다. 극중 대사에 의하면, 사람에겐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방식이 있고, 그들 구성원의 의지에 따라 선택한 결과가 사회의 모습이며,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에 무섭다. 그런 관점에서 영화가 미국사회를 놓고 내린 결론은 비관에 가깝다. 원작자인 르헤인이 인터뷰에서 ‘해답의 부재와 구성원의 무력감’을 언급한 건 그런 정서를 반영한다. 사람이 살면서 겪어선 안 될 일이 버젓이 일어나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아니다. <가라, 아이야, 가라>는 배우로 유명한 벤 애플렉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연출력을 배우고 싶은 선배 감독으로 올리버 스톤을 꼽고 있지만, 유괴사건의 해결과정을 호들갑스럽게 다룬 싸구려 작품들과 궤를 달리한 영화의 진중함은 <미스틱 리버>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올리게 한다.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단호한 방식으로 사건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는데다, 곳곳에 정직하게 비밀들을 심어놓으며 반전에 연연하지 않았고, 원작자와 감독 그리고 배우가 모두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를 보스턴에서 보낸 덕분에 영화의 사실성을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개봉되지 못하고 홈비디오로 직행하기엔 적잖이 아까운 작품이다. 영상과 소리가 평균적인 수준에 머무른 DVD는 감독과 공동 각본가의 음성해설, 원작자와 감독이 들려주는 ‘영화의 뒷이야기’(7분), 배우들의 앙상블을 예찬한 ‘캐스팅’(9분), 6개의 삭제장면(17분)을 부록으로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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