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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영화 속의 문학, 문학 속의 영화를 안내하다
최하나 2008-08-05

<서편제> <천년학> <밀양> 등 원작 소설 쓴 한국문학의 스승 이청준, 7월31일 별세

한국문학이 큰 스승을 잃었다. 소설가 이청준이 7월31일 새벽, 6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폐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던 고인은 최근 병세가 악화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1939년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난 이청준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단편 <퇴원>이 <사상계>의 신인문학상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사상계> <여원> 등 잡지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임부> <줄> <굴레> 등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1968년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듬해인 1969년에는 <매잡이>로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이청준은 등단 초기부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초기작에서 주로 생활과 예술,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탐구하며 관념적인 세계를 구축했던 고인은 이후 산업화에 따른 인간 소외, 체제의 억압, 토속적 민간 신앙과 정서 등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했다. 억압적인 사회 속에서 허물어져가는 개인의 초상을 그려낸 <잔인한 도시>, 소록도를 무대로 1970~80년대 한국사회의 상징적 축도를 그려낸 <당신들의 천국>, 한의 정서와 예술혼을 탐구한 <남도사랑> 연작 등 그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문제를 두루 아우르는 폭넓은 작가 세계를 완성했다.

고인은 한국 문단의 그 누구보다도 영화와 깊은 인연을 맺은 작가였다. 1972년 정진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석화촌>은 청룡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대표작 <이어도>는 1977년 김기영 감독에 의해 스크린을 찾았다. 지난해에는 이창동 감독이 1985년에 발표된 단편 <벌레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 <밀양>을 연출했으며, 이 작품으로 전도연이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고인의 문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널리 알린 영화인은 단연 임권택 감독이었다. 판소리를 통해 민족성과 삶의 본질을 통찰한 <서편제>(1993)는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모았으며, 임권택 감독과 고인이 기획 단계부터 함께 작업한 <축제>(1996)는 소설과 영화로 동반 발표되며 화제를 모았다. 또한 지난해 임권택 감독은 자신의 100번째 영화로 고인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바탕으로 한 <천년학>을 발표했다. 타계 소식을 전해 들은 임권택 감독은 “정말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려서 너무나 애통하다…. 할 말이 없다”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또 “선생 본인도 자신의 병이 그렇게 깊은 줄 잘 모르고 당황한 적이 있었고, 다른 이에게 자신의 아픈 모습을 보이는 걸 굉장히 불편해했다”며 “이 선생의 작품에 깊이 빠져들고, 개인적인 교류를 하면서 마치 내가 잃어버린 고향을 찾은 것 같았다. 내가 영화를 하는 데 너무나 큰 도움을 주신 분”이라고 고인과의 인연을 회상했다.

이청준은 등단 이후 40여년 동안 지침없는 창작활동을 해왔다.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인문주의자 무소작씨의 종생기> <이제 우리들의 잔을> <축제> <흰 옷> 등 11편의 장편소설을 비롯해 <서편제> <이어도> <소문의 벽> <별을 보여드립니다> <살아 있는 늪> 등 130여편에 달하는 중·단편을 발표했으며, 그의 작품은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스페인, 터키 등 전세계에 번역되어 소개됐다. 또한 지난해 11월에는 병마와 싸우는 와중에도 중편 3편과 단편 4편, 에세이 소설 4편 등을 엮은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를 발표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이제, 당신의 천국에서 편히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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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김경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