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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그림자를 가진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보라
이주현 2008-08-06

11개국 30여편의 영화 상영하는 제3회 이주노동자영화제, 8월8일부터 5개 도시에서 열려

이주노동자는 곧잘 ‘그림자 인간’에 비유된다. 그들은 주로 음지에서 일하며, 그림자처럼 개개의 얼굴을 가지지 못한다. 피부색과 국적 때문에 개성이 사라진 그림자 인간이 되고 만다. ‘그림자 인간’, ‘나비의 노래’, ‘이주의 시선’ 등 8개 섹션, 11개국 30여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제3회 이주노동자영화제’가 8월8일부터 9월15일까지 서울, 포천, 마석, 부천, 안산 등에서 열린다. 개막작부터 충격적이다. <데샨토리>는 방글라데시에서 스페인으로 이주를 결심한 26명의 방글라데시 젊은이의 목숨을 건 이주여행을 보여준다. 사하라사막과 지중해를 건너며 맞닥뜨린 인간의 한계.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다 자신의 소변을 마시고, 죽은 동료의 인육까지 먹을 수밖에 없었던 실화를 각색했다.

<바나자>

<마야 거르츄>

자국에서 미래의 희망을 찾지 못한 채 강대국을 향한 선망, 그에 따른 좌절감과 열등감을 안고서 이주를 결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단 방글라데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또 이주에 성공했다고 해서 그것이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그림자 인간’섹션의 <굿바이 테러리스트>는 한국의 이주노동자가 어쩌면 이리도 어처구니없게 테러리스트로 오인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악덕 사장을 만나 돈은 돈대로 떼이고, CCTV를 보며 연기하다 가방은 가방대로 잃어버리고 설상가상 테러리스트로 몰리는 상황이 꼭 영화 속 이야기 같지만은 않다. 영화는 또한 이주노동자의 입을 빌려 “빈부와 피부색에 상관없이 그림자가 같은 사람이라면 거리낌없이 나란히 길을 걸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성 이주노동자들은 소수자 중의 소수자다. ‘나비의 노래’ 섹션에서는 이주노동자 안에서도 쉽게 소외되는 이주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바탐>은 개발 붐으로 공장이 막 들어서기 시작한 인도네시아의 작은 섬에서 공장 직원으로 일하는 와티와 술집에서 일하는 드위, 두 여성의 삶을 보여준다. 싱가포르에서 13마일 떨어진 바탐의 경제는 공장과 매음에 의존한다. 몇년 새 인구는 배로 늘었고 공장과 술집에는 여성들이 노동을 팔기 위해 몰린다. ‘견뎌라,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성공이 보장된 도시로 선전되는 바탐에서 후회하지 않는 방법은 그저 견디는 것뿐이라는 영화의 대사가 바탐의 속살을 보여준다. ‘새로운 세계를 그리는 아이들’섹션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 대해 얘기한다.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소년은 자란다>, 베트남 엄마를 둔 세리와 필리핀 미등록 이주자의 딸 하르의 우정을 보여주는 <세리와 하르>. 두 작품 모두 새로운 세대의 미래를 그린다.

‘이주의 시선’ 섹션은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영상들로 채워져 있다. <국가 보호가 필요하다>는 감독 로버트 프레이의 재치가 엿보이는 작품. 캐나다 출신인 로버트는 콜롬비아에서 온 존과 ‘거북이섬’에서 온 니콜라와 함께 ‘한국에서 제일 인기있는 장소’, ‘너무 재미있어서 사람들이 한번 들어가면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 향한다. 청주외국인보호소가 그곳. 공짜로 밥도 주고 재워도 주는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감독은 문을 두드려보지만 그곳에서 이주노동자 조합원 친구들 몇을 면회하는 데 그쳐야만 한다. 영화 초반 한나라당 버스와 국회의원 몇명이 엑스트라로 출연한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정희의 결혼생활을 그린 <곰 세 마리>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는 작품이다(물론 그 웃음의 대부분은 비전문 연기자들의 어색한 연기에서 비롯하는 측면이 크다). 정희의 한국어 실력은 시어머니가 잡채 만들게 간장을 사오라고 하자 감자 한 봉지를 시어머니 앞에 내미는 수준. 그러다 시어머니가 꾸중을 하면 “왜 저는 만날 예예 해야 돼요?”라고 대꾸한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식구들한테 화가 나 정희는 가출하지만 영화는 끝까지 귀여움을 잃지 않는다.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통해 흥미로운 소통의 기회를 주는 영화들도 ‘문화 공감’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바나자>는 인도의 가난한 어부의 딸 바나자가 춤을 배우며 동시에 사회의 단단한 벽을 경험하게 된다는 이야기. 여성문제, 계급문제 등 무거운 이야기들을 바닥에 깔고 있지만 맨발의 소녀가 가녀린 긴 팔을 허공에 휘두르며 인도 전통춤을 추는 순간만큼은 모든 세상의 문제가 증발해버리는 듯하다. 열다섯 나이에 겪을 수 있는 최대치의 것들을 경험한 뒤 바나자가 마지막으로 추는 춤장면은 압권이다.

영화제 개막파티에서는 이주노동자 밴드 ‘스탑크랙다운’ 등의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며, 영화제 기간에 <굿바이 테러리스트>의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인사도 있을 예정이다. 영화는 서울 종로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 자세한 상영 일정은 영화제 홈페이지(www.mwff.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