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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시간은 언제나 슬프다
정재혁 2008-08-15

한 박스는 족히 넘을 일들이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다. 밀린 일들이 다 소화되기도 전에 다음 일이 터지는 기분이었다.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잡동사니들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고 심지어 텔레비전 한대는 현관에 내앉았다. 꼼꼼히 정리해서 되새겨야만 마음이 편했던지라 쉽게 적응이 안 됐다. 갑작스런 노출에 황급해진 기분을 추스를 여유도 없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방치된 꼬라지였다. 그렇게 대충 20일이 지났다. 이사를 했고, 아빠를 보냈고, 생일을 맞았고, 회사에 앉아 있을 겨를도 없이 부천에서 일주일을 지냈다. 아직 이사한 집엔 실감도 없다. 어정쩡한 기쁨인지, 조금은 좋은 누군가의 비밀도 알아버렸다. 역시 정리할 기분은 되지 않았다. 원래 놓여 있던 위치를 잃은 물건들은 어떻게 재배치를 해도 어색하다. 그냥 몰려오는 시간에 찡기듯 사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조금은 스펙터클하지 않은 사건들로 꾸며졌다면 즐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결국 밤을 새워야만 여유가 가능했다.

언젠가부터 25살이 되면 나는 안심할 수 있는 어떤 모습이 될 거라 생각했다. 막연한 희망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때는 25란 나이가 성장해야 할 일종의 데드라인처럼 느껴졌다. 10cm씩 자라던 키가 멈추기 시작했을때, 괜찮아 대학생 때까지는, 군대에 갈 때까지는 더 자랄 수 있을 거라며 위로했던 것처럼 그때는 아직 25살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하지만 25살이 돼도 변한 건 없었다. 오히려 25에 그려 놓았던 그림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주어진 것도, 놓여진 것도 없어 막막했다. 시간은 계속 아무런 의미없이 지나갔고 어느새 27이 되었다. 오늘같은 내일이 쌓여 만들어낸 25살은 시시하고 재미없었다. 막연하게 희망차 보이지만 미래는 결국 코앞의 일을 수백번 반복하면 찾아오는 허무한 것이었다. 스펙터클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면 과연 시간을 실감할 때가 있을까 싶었다. 키 따위는 잊어버리자며 포기했던 것처럼 나이 따위 잊어버리자고 체념했다.

호소다 마모루가 그린 애니메이션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소녀 마코토는 자꾸만 과거로 뒷걸음질을 친다. 아프게 쨍 하고 지나가려는 여름의 뒤꿈치를 잡고 소녀는 자신도 잘 모를 칭얼거림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소녀가 “여름이 갔다”고 말하는 순간 스크린은 그 어느 때보다 아프게 울렸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가방을 들고 학교에 갔으며 당연스레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던 일상에서 어느 순간 시간이란 게 느껴졌을 때, 그건 겁이었다. 마코토는 아무렇지 않게 왔다갔다 하며 보고 지났던 것들이 이젠 돌아볼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는 상실감 앞에 망연자실했다. 그리고 그때 나도 덩달아 겁을 먹었다. 시간은 그리고 칠하며 손가락으로 세서 계획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미래의 대상이 아니었다. 25가 돼도 느끼지 못했던 어떤 실감을 27이 되던 날 불쑥 내미는 불친절한 선언 같은 것이었다. 다시 한번 밤을 빌려 여유를 부려보려 했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은 꼬랑지도 없이 달아나 있었다. 마코토의 여름처럼 나의 7월이 불쑥 나타나 가슴을 찌르고 도망갔다. 시간은 언제나 슬픈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