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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협상 타결 소식에도 영화계가 잠잠한 이유는?
이영진 2008-08-26

지난 7월15일 타결된 2008년 영화산업 임금협약과 함께 해결되어야 할 과제들

2008년 영화산업 임금협약이 지난 7월15일 타결됐다. 5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교섭을 시작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하 영화노조)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위임교섭단은 연출, 제작, 촬영, 조명 등 이른바 4대 부서 스탭들의 최저임금을 2007년보다 6% 인상키로 하는 등 새 임금협약에 서명했다. 그러나 한달여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결과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들도 올해 4월께 양 단체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2008년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을 시작한다고만 전했을 뿐이다. 7월15일 협약 결과에 대한 추가 보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씨네21> 또한 마찬가지. 협상 진전이 있는지 문의했던 8월 초, 이미 협약이 끝났다는 통보를 들었다. 특별한 쟁점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까. 영화노조와 제협은 따로 보도자료를 내지 않고 각각 자신들의 홈페이지에만 결과를 올렸다.

늦었지만 먼저 협약 결과부터 살펴보자. 2008년 영화산업 임금협약에 따르면, 직급별 최저임금은 지난해에 비해 6% 소폭 인상됐다. 연출·제작부 1조수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8600원에서 9120원으로, 촬영·조명부 1조수는 1만1천원에서 1만1660원으로 결정됐다. 수습의 경우 연출, 제작, 촬영, 조명 등 4대 부서 모두 시간당 최저임금이 4천원이다. 올해부터는 미술, 의상, 분장, 동시녹음 등의 부서에 소속된 노조원들 또한 4천원 이상의 시간급을 지급받을 수 있도록 했으며, 이들이 고용보험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점도 협약안 중 눈에 띄는 대목이다.

10억원 미만 저예산영화에 관한 임금협약 부칙도 일부 수정됐다. 2007년 임급협약에서는 “영화산업 공동화와 산업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10억원 미만 저예산영화는 시간별 최저임금 지급에 있어 예외로 했다. 하지만 이번 교섭에서 “위임사는 노동관계법령을 준수”하되 “현실적 적용의 어려움을 감안해”, 제작사의 순수익이 1억원을 초과할 때는 수익의 일부를 스탭들과 나누기로 합의했다. 수익배분 대상자는 “감독급을 제외한 4개 부서와 미술, 의상, 분장, 동시녹음, 소품 등 모든 부서의 스탭”이며, 제작사의 순수익이 5억원을 초과할 경우 16.5%의 수익은 대상 스탭들에게 돌아간다.

“제작사의 인사권 침해 및 비조합원의 취업 자유를 제약한다”는 점에서 이견을 노출했던 ‘조합원 우선 채용’ 문제는 개별 제작사와 테이블을 마련해 풀어가기로 했다. 현재 영화노조 조합원을 우선 채용키로 약속한 회사는 싸이더스FNH, 나우필름, 영화사 봄, 리얼라이즈 픽쳐스, 씨네2000, 청어람 등 그동안 교섭에 주도적으로 나섰던 제작사들이다. 우선채용 대상 직무는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기간을 정해 채용하는 연출, 제작, 촬영, 조명 등 4개 부서로 한정”하며, 위 6개 제작사들은 “4개 부서 전체 스탭 중 60% 이상의 인원에 대해 조합원을 우선 채용해야 한다”. 2007년 7월 이후 임단협 적용 및 실시와 함께 노조원 채용을 꺼려했던 일부 제작사들의 편법 또한 앞으로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영화산업 부양을 위한 제도 개선과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해

약속은 맺는 것보다 이행이 중요하다. 촬영현장에 실제로 적용되지 않으면 협약문은 휴짓조각에 다름 아니다. 애초 제시했던 최저임금 기준보다 낮은 6% 선에서 영화노조가 서명을 한 것 또한 2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산업 위기를 감안해서다. 영화노조의 김윤태 사무처장은 “최저임금 기준은 말 그대로 최소임금이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경력을 인정받아 최저임금 이상을 받는 스탭들은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볼 때 6% 최저임금 인상은 만족스럽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고용불안 문제가 더 우선이다. 제작사들 또한 사정이 어려운 것을 아는데 내부적으로 정한 최저임금 기준을 고수할 수만은 없었다”고 말했다. 리얼라이즈 픽쳐스의 원동연 대표 또한 “제작비 상승 부담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며 “영화노조가 최저임금 기준을 양보한 끝에 양쪽이 절충안을 찾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 제작자는 “이번 임금협상의 경우 지난해와 달리 큰 이슈가 없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며 이슈를 제기할 만큼 양쪽 모두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현재 영화노조가 파악한 바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제작된 영화는 대략 20편 남짓이다. 남은 기간 동안 10편 정도가 제작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올해 제작편수는 30편 내외다. 저예산영화를 제외하면 제작편수는 지난해 75편에 비해 무려 5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즘 동료가 운전하러 올까봐 대리운전 부르기도 무섭다고 한다. 조합 소속 프로듀서들이 160명 정도인데 상당수가 영화 및 유관 분야 이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관계자의 말이다. 영화노조 김윤태 사무처장도 “전체 스탭의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 것 같다”면서 “대부분 케이블, 뮤직비디오, 광고 등의 일을 하며 열악한 처우를 감수하고 있다”고 전한다.

올해 노사가 임금협약시 제도개선위원회를 구성하기로 뜻을 모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제협과 영화노조는 ‘단체협약 이행 관련 부속합의서’를 마련해 “영화산업 인력개발, 실업급여, 공동제작유치, 표준근로계약서 등 산적한 영화산업 현안을 공동으로 해결키로 했다”. 영화노조 최진욱 위원장은 “전체 협약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영화가 안 만들어지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면서, 협약이 실효를 거두려면 제도 개선 및 환경 조성 노력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실업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유능한 인력들의 유출을 막아야 하며, 해외영화들의 로케이션 유치 등을 통해 영화계 고용불안을 해소시키고, “건강보험료를 내면서도 실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영화스탭들을 위해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부율 조정 및 다운로드 사업 등 제작사들의 수익률 회복 노력에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탤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것만으로는 현안을 돌파하기는 역부족이다.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해외영화들의 로케이션 유치를 위해서는 정부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영화촬영에 있어 풍광이나 날씨만 놓고 보면 한국이 매력적인 곳은 아니잖나. 호주나 하와이처럼 제작비의 30% 정도를 분담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해외 작품들을 끌어들이려면 어드밴티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전혀 없다. 무엇보다 정책 지원을 적극적으로 고민할 만한 주체가 없다는 게 심각한 상황이다.” 리얼라이즈 픽쳐스 원동연 대표의 지적이다. 영화노조 또한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정부와 영화계의 다리가 되어야 할 영진위가 아직 사무국장 인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영화가 활력을 되찾기 위한 상생의 노정에 노사가 함께 발맞추기로 했지만 아직 어떤 입장도 표명하고 있지 않는 정(政)이 올해 안에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정부와 영화계를 잇는 채널이 절실하다”

최진욱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인터뷰

-최저임금 6% 인상에 만족하나. =그럴 리가 있겠나. 협상을 하면서도 처음에는 지난해 많이 양보했으니 올해는 어느 정도는 가야겠다고 위임교섭단에 분명히 했다. 하지만 우리 주장을 관철시키는 게 쉽지 않았다. 투자가 경색 국면에 들어서고 제작사들이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임급협상 과정에서 제협 위임교섭단과 제도개선위원회를 만들기로 했다고 들었다. =지금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제작사와 함께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었다. 제도개선위원회를 통해 실업부조금제도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사실 이런 시도가 처음이라 어려움이 적지 않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만으로 현 정부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본다. 영화 산업 내의 주체들끼리 논의해서 같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사안이다. 제협, 전국영상위원회협의회 등과 같이 준비 중인 국제 공동제작지원센터 건도 다르지 않다.

-실업부조금제도의 경우 법령 개정 등 절차가 복잡하다. =고용보험을 통한 혜택을 받으려면 180일 이상 일해야 한다. 그런데 영화스탭들은 현장의 특성상 조건을 충족시킬 수가 없다. 180일 기한을 줄이는 것도 방법인데, 프랑스가 아닌 이상 왜 영화스탭만 예외로 두느냐며 일각에서 형평성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현재는 스탭들에 대한 재교육을 진행하면서 보조금을 지원받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실제 노사가 영화스탭 직무능력개발 프로그램(FILM SKILL PROMOTION)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선 영진위쪽과 대화가 필요할 텐데. =2009년 사업계획안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다. 다만 영진위 내에 관련 소위원회가 구성돼서 영화계와 소통을 충분히 한 다음에 정책들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일방적이라는 우려가 높다. 고용불안을 일정 부분 해소하기 위해 추진 중인 해외영화 로케이션 유치만 하더라도 서울시 등의 지자체는 적극적인데 정작 영진위쪽은 채널조차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