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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나의 배우스케치] 매튜 브로데릭

<찰리 바틀렛>에서 아이들의 사랑을 받길 원하는 말썽쟁이 만능 재주꾼 소년 찰리를 연기하는 안톤 옐친의 모습을 보다보니 매튜 브로데릭이 생각났습니다. 그만큼이나 찰리 바틀렛은 페리스 뷸러다웠고 안톤 옐친 역시 매튜 브로데릭의 영혼이 들어온 것처럼 경쾌하고 발랄하게 그를 둘러싼 어른들의 세계에 도전했지요.

<찰리 바틀렛>은 썩 재미있는 영화지만 <페리스 뷸러의 휴일>이 주었던 엄청난 쾌락을 관객에게 제공해 주지는 못합니다. 후발주자의 한계죠. 이미 존 휴스와 매튜 브로데릭이 그 영역에서 할 건 다 했습니다. 남은 게 별로 없어요. 느긋하게 기존의 아이디어를 재해석하거나 뒤트는 수밖에. 1980년대 젊은 미국 관객에게 <페리스 뷸러의 휴일>이 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건 새로운 종류의 10대 영화였어요. 60, 70년대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세계에 반항했다면, 페리스 뷸러는 어른들 위에 군림했습니다. 타고난 잔꾀와 어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첨단 테크놀로지에 대한 지식을 더하면 그는 거의 백지수표를 가진 것처럼 종횡무진 시카고 시내를 누비며 하루를 즐길 수 있었어요. 그 자유도 자유였지만 그 영화가 제시하는 미래는 정말 희망찼습니다.

저에겐 매튜 브로데릭의 또 다른 대표작 <워 게임>도 <페리스 뷸러의 휴일>과 거의 같은 부류의 영화로 보입니다. 물론 인공지능을 설득해 핵전쟁을 막는 해커 소년과 학교 땡땡이치는 고등학생 이야기를 동급으로 놓을 수는 없지요. 하지만 매튜 브로데릭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같았습니다. 순진무구하고 예쁘장하게 생겼지만 세상의 규칙이 어떤지 훤하게 알고 그걸 능수능란하게 적응하는 아이 말이죠. 브로데릭은 그런 부류였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자신의 소년다운 매력과 재능을 이용해 편하게 살 것 같은 아이.

그게 20여년 전 일입니다. 검색하기 귀찮은 분들을 위해 말한다면 <워 게임>은 1983년에 나왔고 <페리스 뷸러의 휴일>은 86년작이죠. 매튜 브로데릭은 그동안 자신의 초기 이미지를 수호할 수 있었을까요? 아뇨. 그게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여전히 얼굴은 예쁘장했지만 소년다운 매력은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동시대 싸나이들 사이에선 버티고 살아남기 어려웠죠. 여전히 잔꾀 많은 이미지였지만 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세상은 그만큼이나 교활해졌습니다. 차별화는 어려웠고 역할을 딸 가능성은 축소되었죠. 그의 90년대는 실망스러웠습니다. <글로리>와 같은 영화들도 있었고 <인피니티>에서 리처드 파인만을 연기할 기회를 얻기도 했지만 매튜 브로데릭 이미지는 거의 죽은 것 같았죠. 20세기가 끝날 무렵 때맞추어 등장한 <일렉션>은 그 때문에 더 서글펐습니다. 브로데릭의 연기는 좋았어요. 하지만 그가 연기한 고등학교 교사 짐 맥칼리스터는 지금 세상이 <페리스 뷸러의 휴일>을 보며 열광한 관객이 상상했던 미래와 같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죠. 짐은 여전히 교활하고 영리했지만 그의 제자들은 한술 더 떴고 그의 인생은 그냥 궁상맞았습니다. 그가 그 전후에 연기했던 캐릭터들을 보세요. 페리스 뷸러의 자신감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프로듀서스>의 처량한 리오 블룸이 더 중년의 브로데릭의 이미지에 맞지요.

얼마 전에 전 매튜 브로데릭에 대한 가십성 기사를 접했습니다. 스물다섯살 난 여자랑 바람 피우다 들켰다는군요. 전 그와 사라 제시카 파커의 사생활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으니 누가 누구와 바람을 피우건 관심이 없어요. 저에게 슬프게 다가왔던 건 바람 자체가 아니라 브로데릭이 바람을 피우다 ‘들통났다는’ 것입니다. 결국 페리스 뷸러는 허구였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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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임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