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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병원보다는 편집부!
심은하 2008-09-05

정확히 4번의 마감을 못했다. 일주일 단위로 돌고 도는 마감인생에 볕들 날이었냐고? 갑작스런 사고로 마감을 못했던 첫주에는 좌불안석이었다. 의사가 오른쪽 발목 인대가 많이 늘어났다며 깁스를 대어주는 순간에는 이 선생님이 장사를 하시려고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단순 염좌일 테니 길어봤자 2주 휴식하면 되겠지 스스로 뻔뻔하게 진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나, 며칠 뒤 병문안을 온 편집장과 편집팀 후배들에게 한주만 더 쉬고 출근하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제길, 발목 통증이 없어지기는커녕 점점 무릎까지 시큰시큰해왔다. 그제야 한귀로 흘려들었던 최소 4주는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 순간 편집팀 K후배의 휴가는 밀리고 또 밀려버렸다. 사진으로만 본 후배 부인에게도 미안하다. 흑흑흑.

볕들 날이었냐는 질문에 솔직히 대답하면 병원생활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2주 뒤부터 마감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다. 심지어 병원을 찾아오는 지인들 편에 배달되어온 <씨네21>은 평소보다 멋져 보였다. 편집팀 후배들이 새삼 든든했다.

규칙적인 병원생활은 불규칙적인 마감인생을 사는 나에게는 많이 불편했다. 오전 7시 조금 넘어 나오는 아침밥 먹기가 가장 힘들었고, 밤 10시 넘으면 불이 꺼지는 병실이 낯설었다. 게다가 눈 뜨자마자부터 불 끌 때까지 켜져 있는 TV는 가히 고문 수준이었다. 그 덕(?)에 못 볼 구경 많이 했다. 하나는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의 진수라 할 <조강지처클럽> 욕하며 보기. 올림픽 중계에도 불구하고 한 차례도 결방하지 않은 대단한 놈이다. 하지만 시청자를 황폐화시키는 극단적인 드라마는 하루 빨리 끝나야 한다. 두 번째, 심권호 해설위원의 레슬링 경기 중계. 이보다 웃긴 코미디는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심권호씨 그때 필요한 건 뭐? 해설! 응원이 아니고요, 막말을 어찌나 질펀하게 하는지 흥분하는 그의 표정만 떠오르고 경기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세 번째, 메달 딴 선수들에게 이상형의 연예인은 누구냐고?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메달리스트와 연예인 짝짓기 놀이 “우웩”.

병원생활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시원하다는 것. 누구는 올 여름이 <월·E>에서 보여준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구의 모습을 걱정할 때임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 무더위였다고 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 무더위를 난 모르고 지났다. 폭우가 쏟아지던 7월 중순에 입원해 가을바람이 솔솔 불 때 퇴원했으니. 또 병원생활에서 깁스를 고정한 붕대 자국으로 인해 피부가 빨갛게 부어올라 가려운 ‘붕대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도 체득했고, 3년 가까이 살면서도 지역정보에는 일자무식이던 내가 지금은 우리 동네의 좋은 찜질방 하나 정도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소라면 몇달은 시간을 들여야 할 분량의 소설과 만화책을 읽었고, 자주 못 보던 선후배와 친구들도 만났다. 그들 모두에게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4주간의 조정 결과 아침형 인간으로 변신하려는 찰나, 다시 공포의 마감인생으로 복귀했다. 아직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지만 출근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그 기운이 소진되기 전에 휴가 못 간 선후배들, 회사는 내가 지킬 테니 어여 떠나세요.

p.s. 귀한 지면을 사심 가득한 이야기로 채워 민망하지만, 감정표현이 서툰 편이라 이렇게라도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려는 소심함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