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포커스] 일부 외부 음식물, 이제 극장 반입 된다
장영엽 2008-09-02

공정위, 극장 반입 음식물 기준 모호 지적…멀티플렉스 4곳 대상, 반입 품목 늘리고 관객에게 공지 조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난 8월25일 국내 주요 멀티플렉스 영화관 네곳을 상대로 외부음식물의 허용 범위를 넓히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프리머스시네마는 외부음식물 반입에 대한 내부 규정을 바꾸기로 의견을 모았다. 공정위는 “극장 매점에서 팝콘과 나초, 커피 등을 팔면서 그와 비슷한 종류의 외부음식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건 소비자에게 불이익을 제공하는 불공정거래행위”라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많은 관객이 극장쪽의 모호한 음식물 반입기준에 불만을 표시해왔지만, 공정위와 같은 행정기관이 직접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경우는 드물었다. 해당 영화관들은 공정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극장에 반입 가능한 음식물의 종류를 늘리고, 관객이 이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각 회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변경 사항을 공지했다.

공정위의 이번 권고로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영화관 밖에서 산 커피나 아이스크림, 봉지과자를 당당하게 들고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관객이 극장 밖에서 산 음식을 들고 있다가 극장 직원의 제지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음식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는지 관객이 알기 힘들고, 극장들이 반입을 금지하는 품목에 뚜렷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롯데시네마를 제외한 주요 상영관 세곳은 전광판이나 인터넷 등 관객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공간에 외부음식물 반입 제한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올려놓은 적이 없다. 또 안전을 이유로 뜨거운 커피의 반입을 금지해온 롯데시네마의 경우 극장 매점에서 뜨커운 커피를 판매하고 있어 관객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영화관쪽의 이러한 규정 때문에 일부 관객은 가방 속에 음식물을 숨긴 채 상영관으로 입장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당수 관객들 환영, 음식물 반입 제한 관련 소송 전례도

영화관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극장들이 반입을 금했던 음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덮개가 없는 뜨거운 커피나 깨질 위험이 있는 유리병 음료처럼 안전상으로 문제가 되는 음식, 피자나 햄버거, 김밥 등 강한 냄새로 다른 관객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음식, 소음을 유발할 수 있는 봉지류의 과자와 캔 음료가 그것이다. 이번에 제한 품목에서 ‘구제받은’ 음식은 뜨거운 커피와 아이스크림, 캔 음료와 봉지과자다. 롯데시네마는 아이스크림과 뜨거운 커피(덮개가 있는)를 반입금지 목록에서 삭제했다. CGV와 프리머스시네마는 캔 음료와 봉지과자를 극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허용했다. 냄새가 강한 음식들은 여전히 반입할 수 없는 품목에 올라 있다. 공정위의 권고는 모호한 기준으로 음식물을 규제해오던 극장쪽의 행동에 일차적인 제동을 걸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변화를 가장 반기는 사람은 역시 관객이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는 8월28일 현재 관련기사에 372개의 댓글이 달려 네티즌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대다수의 관객은 비싼 극장 음식을 무조건적으로 사지 않아도 돼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실제로 영화관 매점에서 판매하는 스낵의 가격은 평균 5천원을 훌쩍 넘어 밥값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네티즌 qpfmakcnl은 “극장 매점에서 일해봤는데, 극장은 영화 수익보다 매점으로 폭리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 조치는 소비자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결정”이라 말했다. 네티즌의 이러한 지적은 극장쪽의 외부음식 반입 규제로 인해 관객이 상당한 불편을 겪어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난 2004년에는 대학생 양모씨가 “극장이 관객의 외부음식물 반입을 금지해 부당한 이익을 보고 있다”며 서울 강남의 한 영화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었다.

극장 측, 여타 관객의 불편과 매점 수익 감소 우려

해당 영화관들은 공정위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이러한 조치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눈치다. 한 극장관계자는 “솔직히 외부음식물에 대한 우리의 기준을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면서도 “음식물과 관련된 내용으로 이미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아 평소에도 이 문제에 비교적 잘 대처해왔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이러한 권고가 필요했는지는 의문”이란 입장을 전했다. CGV 이상규 홍보팀장과 메가박스 최정희 홍보팀장은 입을 모아 “음식물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편안함을 느끼는 고객들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그로 인해 불편을 겪는 관객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밝혔다. 롯데시네마 홍보팀 임선규 과장은 “마치 그 이전에는 대부분의 외부음식물을 철저하게 제한했다는 듯이 언론에 비쳐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극장쪽이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외부음식물이 극장으로 반입되는 사례가 늘어나면 영화관의 ‘효자 사업’이라는 매점수익 또한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극장은 입장권 수익이 아니라 매점 수익으로 먹고산다는 말이 있듯 영화관 매점은 국내외를 불문하고 극장의 알짜배기 장사다. CGV의 2007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CGV의 실제 영업이익 중 47%가 매점 운영에서 나올 정도로 매점수익이 영화관에 기여하는 바는 크다. CGV 이상규 홍보팀장은 “음식물 반입을 제한하는 조치가 극장의 매출을 올리려는 수단으로 쓰이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외부음식물을 제한하는 행동과 극장 매점 수익률이 관계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말한다. 외부음식물을 더 많이 허용할수록 극장으로서는 새로운 시장과 경쟁해야 하는 부담감이 커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몇년 전부터 비슷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왔음에도 당사자인 영화관들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어찌됐든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 편의점이라는 새로운 ‘맞수’를 만난 영화관으로서는 수익 창출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인 듯하다. 지난 4월 CGV가 열두개 지점에서 합법적으로 맥주를 팔기 시작한 건 새로운 수익 구조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 메가박스는 매점 수익의 일등 공신인 팝콘의 종류를 일반 팝콘, 캐러멜 팝콘, 버터갈릭 팝콘 등으로 다양화해 판매량을 높이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으며, 프리머스의 경우 식혜, 약과 등과 같은 웰빙 음식을 판매하며 기름진 음식을 싫어하는 관객을 공략하고 있다. “그동안 극장을 찾는 관객을 독점했으니 이제는 좀더 관객 중심적인 서비스로 어필해야 하지 않을까.”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한 관객의 말은 극장이 앞으로 고민해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공정거래위원회 김우성 조사관 인터뷰

“반입 제한 음식, 합당한 사유가 없는 경우도 있더라”

-이번 시정 권고가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2003년 주요 놀이공원에 외부음식물 반입을 금지한다는 이유로 내부 약관을 시정하라는 지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런 선례가 있었고, 지난해 국정감사 때 정무위원회쪽에서 극장은 아직도 외부음식물 반입이 잘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올해 초부터 실태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극장 조사에 들어갔다.

-어떤 조사를 했나. =우선 극장쪽에서 어떤 음식들을 제한하고 있는지 조사했다. 그 다음 금지품목 중에서 극장 매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음식물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대부분이 합당한 제한 사유를 가지고 있었으나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못한 점도 있었다. 불공정하다고 판단되는 요소들은 극장들이 직접 시정하도록 조치했다.

-어떤 점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했나. =무엇보다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알리지 않은 채 일부 음식물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점이 문제였다. 예전에는 상영관 입구에 “어떤 음식물은 반입을 제한한다”고 써붙였는데 조사 결과 현재까지 전광판이나 인터넷, 극장입구에 세워놓은 표지판을 통해 반입 금지 품목을 공지하고 있는 극장은 롯데시네마뿐이었다. 또 일부 극장에서는 극장 안으로 가지고 오지 못하게 하는 따뜻한 커피 같은 음식물을 극장 매점에서 팔고 있었다. 이런 점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고, 영화관쪽에서도 이러한 지적에 동의했다.

-만약 앞으로 권고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 =다시 조사해 시정명령 등의 행정조치를 내릴 수 있다. 이번에 시정을 권고받은 네개 멀티플렉스의 관객점유율이 70%에 이르기 때문에 이들의 행동이 나머지 극장들의 행동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