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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광이] “나를 감동시키는 걸 찍는다”
문석 사진 김진희 2008-09-02

시네마디지털서울2008 레드 카멜레온상 수상작 <살아남은 자의 송가>의 위광이 감독

“저는 18살 때 처음으로 기차를 봤습니다….” 무대에 올라 수상소감을 말하기 시작한 중국 위광이 감독의 눈가는 금세 촉촉해졌다. 그는 <살아남은 자의 송가>로 8월26일 폐막한 시네마디지털서울(CinDi) 2008에서 4명의 감독 심사위원이 수여한 레드 카멜레온상을 받았다. 지난해 데뷔작 <마지막 벌목꾼>으로 바로 이 영화제에서 두개 부문의 상을 공동 수상했던 그에게 또다시 트로피를 안겨준 <살아남은 자의 송가>는 한 사냥꾼 집에 더부살이하는 사람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살아남은 자의 송가>는 사람들로부터 모멸과 무시를 당하며 살아가는 샤오리라는 주인공의 ‘인간다움’에 초점을 맞추는 감동적인 영화다. 1961년 장백산(백두산) 인근 마을에서 태어나 18살이 될 때까지 기차 한번 보지 못한 채 이곳에서 살았던 위광이 감독은 마흔이 넘어서야 처음 붙잡은 카메라로 고향 마을과 사람들을 담아왔고, 지금도 같은 지역에서 세 번째 영화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상을 받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너무 우수한 감독들의 훌륭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어떻게 만들게 됐나. =애초에는 벌목이 끝난 뒤 벌목꾼들의 삶을 보여주려고 시작했다. <마지막 벌목꾼>에서 이어지는 느낌으로 말이다. 그래서 군대 동기인 친구 라오한에게 연락해서 그의 집을 찾게 된 것이다. 그곳은 흑룡강성의 도시민들에게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저수지 인근인 탓에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다. 그렇게 시작해서 찍던 도중 15일째 되는 날인가 집을 나갔던 샤오리가 돌아왔다. 그를 만난 순간 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찍는 데 얼마나 걸렸나. =<마지막 벌목꾼>은 2004년 12월 말부터 2005년 5월까지 작업했는데, 이 영화는 2006년 10월부터 2007년 10월까지 딱 1년 동안 찍었다. 내 집은 그곳에서 400km 정도 떨어진 다칭(大慶)인데 배터리 충전 등의 이유로 수시로 두곳을 오가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실제 만난 샤오리는 어떤 사람인가. =내 생각에 그는 정상인이다. 그 또한 살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히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사람 같지 않은 모습으로 외롭게 살면서도 노래로 자신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동정심도 들었고 존중하는 마음도 생겼다. 샤오리는 영화 후반부에 나오는 운전사가 데려가 비교적 잘 살고 있다. 앞으로도 그에게 관심을 가질 것이며 도움을 주고 싶다. 그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샤오리가 ‘디스코’를 외치면서 노래 부르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찍은 지 오래 되었지만 아직도 그 노래는 귓가에 맴돈다.

-샤오리라는 인물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장면은 샤오리가 집주인 아주머니가 소변 보는 모습을 훔쳐보는 대목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샤오리가 매일 화장실 앞에서 여주인이 소변 보는 모습을 관찰한다고 하더라. 한 성인이 이성을 갈구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성욕이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며 인간이라면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문제 아닌가. 결국 샤오리 또한 정상적인 욕망을 가진 인간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집어넣었다.

-다음 영화도 고향 사람들을 담을 것인가. =그렇다. 찍기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됐다. 한 원시종족의 샤머니즘에 관한 영화인데, 거기에도 물론 사회문제가 포함되겠지만 이전 영화들보다는 좀더 편하게 다가갈 생각이다.

-고향 마을에서만 고집스럽게 영화를 찍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향은 헤이룽장성 우창(五常)이라는 곳인데, 일단 내가 그 지역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해가 넓다. 그리고 거기서 겪었던 일 중에는 감동을 주거나 울림을 주는 것이 많았다. 그것을 글로도 써보고 판화로도 표현해봤지만 내 마음을 모두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러다 카메라를 놓고 대상을 찍으면서 그것을 표현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는 미술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고향에서 18살까지 살다가 3년간 군대를 다녀와 6년간 벌목장에서 일했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는데 항저우 미술학교에서 판화를 배웠고 86년부터 다칭에서 화가로 활동해왔다. 그러다 영화를 하게 됐는데 그건 순전히 고향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곧 사라질 모든 것을 찍어서 후대에 보여주려는 것이다. 영화를 찍는 원칙은 하나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을 찍는다,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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