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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100분 동안 낄낄댈 전염성 높은 코미디
2008-09-17

1996년작 이정국 감독의 <채널 식스나인>이 특별한 까닭

한국 영화사에서 이정국의 1996년작 <채널 식스나인>는 묻혀진 영화다. 많은 영화평론가들도 이에 대해 이견이 없는 듯하다. 사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이 영화를 본 또 다른 사람은 동료 외신기자클럽 칼럼니스트 스티븐 크레민뿐이다. 그 역시 나처럼 이 영화를 좋아한다. <채널 식스나인>에는 배우 신현준이 제하(전직 보도 기자였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쫓겨난 뒤 해커가 된 인물)로 출연한다. 제하는 검사의 요구로 위험한 신종 컴퓨터 바이러스를 만들어낸 라이벌 해커 석기(홍경인)를 쫓던 중 권력기관이 자신을 배신한 걸 알고는 갑작스레 마음을 바꾼다. 곧 제하와 석기는 평범치 않은 일군의 사람들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 섹시한 노출증 환자 조민희(최선미), 게이 프로그래머 양 박사와 임 박사, 그리고 석기의 애견 핸델이 그들이다. 뛰어난 지능에 할 일은 없는 이들은 곧 주요 방송사를 해킹해 9시 뉴스 대신 민희를 한국 최초의 PJ(포르노 자키)로 내세운 포르노 쇼 <채널 식스나인>를 내보낼 계획을 세운다.

위 단락의 시놉시스를 다 읽기도 전에 이미 많은 독자들이 이 페이지를 넘겨버렸으리라. 그러나 <채널 식스나인>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에서 만들어진 가장 귀여운 영화인 걸 어떡하겠는가. 통상적으로 말하는 웰메이드영화는 확실히 아니지만 이 영화는 만들어진 뒤 12년이 지난 지금 봐도 여전히 호기심과 재미를 자아낸다. 1996년에 볼 때보다 오히려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영화는 특이하다. 이 영화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 유일하게 컴퓨터광들의 지식과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시대에 뒤떨어져버려 지금 보면 우습기까지 한 그 당시 기술에 대한 진지한 애정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컴퓨터광처럼 영화는 또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강한 관심을 보여주지만,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또 무척 불편해한다. 성적으로 아슬아슬해 보이려 하는 영화 속의 시도들은 오히려 투덜대거나 소름만 돋게 할 뿐이다.

섹시하지도 않고, 잘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그렇다면 뭐가 <채널 식스나인>의 매력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영화 전체에 퍼져 있는 전염성 높은 재미다. 내가 보기에 현재의 많은 한국 코미디들은 너무 긴장해 있다. 항상 어깨너머로 보면서 “재밌었지?” 하고 확인하는 듯하다. 배우들이 거칠고 미친 짓을 할 때조차 긴장해 있다. <채널 식스나인>의 몇몇 농담은 재미없지만 배우들은 그런 것에 상관없이 즐겁고 재미있어 보인다. 특히 최선미는 정말 무척 즐겁고 재미있어하는 듯하다. 전혀 말이 안 되는 역할을 해야 하는 탓에 오히려 그녀는 대부분의 장면에서 사이코 고양이처럼 스크린 주위를 이리저리 튕겨다닌다. 박근형이 연기하는 타락한 국회의원은 이 영화에서 ‘나쁜 놈’이지만 눈을 부릅뜨며 자기 잘못을 부인할 때 사뭇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1996년에 만들어진 영화로는 놀랍게도, 두명의 게이 남성은 정말 사랑스럽게 그려진다. 영화는 한번도 이들이 게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분명한 힌트를 준다. 1996년에 많은 관객이 이를 눈치채지는 못했으리라 짐작되는데 양 박사와 임 박사는 스크린 한구석에서 내내 서로를 더듬고 있다.

여기에 발랄한 사운드트랙, 컴퓨터광들과 정치인들의 대결이라는 다소 전복적인 플롯이 더해져, 이 영화를 보면 100분 동안 낄낄거리며 즐겁게 웃을 수 있다(술 한잔 곁들이며 볼 수 있다면 이 영화를 백배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영화감독들이 이런 영화를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설령 그들이 원한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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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