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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 마니아] 두기봉이 시가를 피우도록 허락한 배우
주성철 2008-09-12

<매드 디텍티브>는 정말 걸작이다. <신탐>(神探)이라는 한자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무미신탐>(無味神探, 1995)으로부터 10년 뒤 두기봉은 같은 배우 유청운을 데리고 마치 그 후일담처럼 보이는 형사 이야기를 압도적인 분위기로 완성했다.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를 무한 변형시키면서 다중인격으로 만드는 이 영화는 자신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치열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역시 그 중심에는 유청운이 있다. 두기봉 스스로 자신의 전환점이라고 말해온 <무미신탐>에서 유청운은 ‘더티 캅’의 전형을 연기했다. 그냥 무표정하게 있어도 험상궂은데 내내 인상을 찡그리고 있으니, 선과 악의 경계가 없다는 관습적인 표현은 그냥 그 얼굴 자체다(<매드 디텍티브>에서 자신의 귀를 도려내는 충격적인 장면을 보라). 슬레이트 지붕이 여기저기서 흘러내리는 가운데 범죄자와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언제나 기가 막힌 명장면을 만들어내는 두기봉의 솜씨를 확인시켜주고, 머리에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나긴 했지만 그로 인해 특이한 병에 걸려 중요한 순간에 깜박 잠이 들어버리는 유청운의 모습은 거의 가슴이 터지게 만든다. 가공할 라스트 액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주인공이 잠들어버리다니!

사실 두기봉의 남자들 중에서 유청운을 가장 좋아한다. 그냥 유청운이나 고천락처럼 터프하고 ‘굵게’ 생긴 배우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더 히어로>(1998)에서는 여명보다 멋있었고, <암화>(1998)에서는 양조위보다 멋있었고 <암전>(1999) 시리즈에서는 유덕화보다 멋있었다. 음, 황추생과 오진우하고는 승부를 가리지 못하겠지만 사실 좀더 좋다. 말하자면 그는 말론 브랜도나 알 파치노, 잭 니콜슨처럼 상대배역들을 다 잡아먹지 않고는 성이 풀리지 않는 카리스마의 배우다. 두기봉 역시 그를 가장 사랑했을 거라고 짐작하는 이유는, 언제나 존 포드처럼 시가를 즐겨 피우는 두기봉 감독이 자신의 영화에서 멋지게 시가를 피우도록 허락한 유일한 배우가 바로 유청운이라는 사실이다. <더 히어로>에서 그는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시가를 피운다. 그 간지를 낼 수 있는 배우는 아마 홍콩영화계에서 없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두기봉과 유청운의 영화를 꼽으라면 <무미신탐> 외에도 <더 히어로>와 <암화>다. 보통 두기봉의 영화들을 <미션> 이후로 많이 언급하지만 이 시절의 영화도 나에게는 하나같이 걸작들이다. <독비도>의 외팔이 왕우를 넘어 심지어 두 다리를 잃고 자기가 직접 만든 수레를 끌고 양손으로 줄을 타면서 복수에 나서는 <더 히어로>, 거울 방에서 자신과 적의 잔상들이 눈부시게 비쳐지는 수십장의 유리를 깨트리며 총격전을 벌이는 <암화>의 라스트신은 지나치게 아름답다. <무미신탐>처럼 치명적 신체적 약점을 지닌 주인공이라는 설정은 엽위신의 <폭열형경>(1999)의 오진우에게서도 발견된다. 종종 근육이 활동을 제대로 못하는 불치병에 걸린 그는 결정적인 순간 역시 근육이 멎어버린다. 이번에 두기봉의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폭열형경>을 봤느냐고 물었다. 오진우 역시 그의 남자이기 때문에 안 봤을 순 있어도 그 영화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질문들에 짧게라도 모두 답변했던 그가 유독 그 질문에만 답하지 않았다. 아 정말 궁금해 미치겠다. 그런데 두기봉 감독님께서는 왜 한국에 안 오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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