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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이 뽑은 불온아이템 [2] 도서 리스트 10
이다혜 2008-09-23

01. 순진한 중산층에게 강추!

<직선들의 대한민국> 우석훈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

국방부의 불온서적 목록을 보고 이상했던 것 하나. 진중권, 홍세화, 박노자, 우석훈의 저작은 왜 빠져 있을까? 혹시 베스트셀러가 될 것을 미리 내다보고 일부러 누락한, 고도의 “까” 전략일까. <88만원 세대>의 우석훈 교수가 쓴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그 목록의 몇몇 책들보다는 더 과격한 주장을 담고 있는데 말이다. “직선들의 두목, 불도저들의 우두머리가 대통령이 되는 시대가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인 경제이성이 한국에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지적을 뒷받침하는 건 서울시에서 추진한 뉴타운의 경우 집이 없는 거주민들도 개발을 지지한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의 경향으로 보면, 원래 그 동네에 살던 사람의 10% 정도만이 새로 만들어진 뉴타운에 입주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도심에서 더 먼 곳으로, 혹은 원래의 거주 조건보다 더 나쁜 곳으로 이동한다. “우리 동네”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오는 일을 환영하면서 정작 그 자신이야말로 “우리 동네”에서 밀려나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경제이성이나 상식이 실종된, 도로가 뚫리고 최신형 건물들이 들어서면 모든 것이 나아질 거라는 건설 미학과 착한 사람들의 대책없는 순수함. 이 책을 읽어야 할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중산층 워너비”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아토피를 앓는 아이들과 엉터리 도시 조경사업의 현장인 청계천에 가 발을 담그는 일의 해악을 두루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을 걱정하는 당신에게, 걱정해야 할 사람은 바로 당신임을 알려주는 책.

02. 목차만 읽어도 소름돋을 세계화의 해악

<닥쳐라, 세계화!> 엄기호 지음/당대 펴냄

<닥쳐라, 세계화!>의 목차만 읽어도 소름이 돋는다. 우리 눈앞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건들의 축약판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1장 ‘망명자들의 세계화’에서는 청년실업, 난민, 이주노동, 성노동을, 2장 ‘국가의 경계와 새로운 중세’에서는 슬럼과 성채도시, 해방신학, 공정무역과 혁명세를, 3장 ‘공격받는 시민들’에서는 교육권, 식량주권, 건강권을 이야기한다. <닥쳐라, 세계화!>는 협소한 뜻에서의 ‘우리’를 광의의 ‘우리’로, 즉 한국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세계화의 맥락에서 읽게 해주기 때문에 중요하다. 2006년 기준으로만 봐도 전세계적으로 8600만명의 청년실업자가 있다. 청년 노동인구는 전체 노동인구의 25%, 청년 실업인구는 전체 실업인구의 45%인 게 현실이다(2008년 기준으로 다시 통계을 내면 상황은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고 전 지구적으로 전개된 신자유주의 노동 유연화 정책 결과, 계약직·비정규직이나 아예 비공식 노동영역의 일자리인 경우가 대다수가 되었으니 일자리라고 다 같은 일자리가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사라졌고, 사회보장은 노동자 개개인의 책임이 되었다.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이야기가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라는 말이다. 광우병만큼이나 신경써야 할 식량 주권 문제에 대한 언급도 놓치지 말 것. “신자유주의 세계화에서 농산물은 로컬시장을 넘어 무역의 대상이 되는 상품이 될 때만 살아남을 수 있는 운명이 되었다. 애초부터 수출을 목표로 삼지 않고 자기 나라와 자기 동네에서 소비자를 찾는 농업은 망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농부로 살기가 죽기보다 힘든 세상이라는 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게 되었다.

03.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영원히!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성립> 시민+복지 기획위원회 엮음/산책자 펴냄

촛불은 승리했나, 패배했나. 혹은 촛불은 누구였나, 무엇이었나. 촛불에 얽힌 다양한 문제의식과 그 해법 탐구 중 하나를 이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성립>에서 찾을 수 있다. 촛불은 먹을거리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공포이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좌파의 역할과 위치를 재확인한 사건이기도 했다. 80년대 운동권이 아니었다 해도 최근 들어 “나라 꼴이 왜 이런가”를 고민하며 읽을 거리를 찾던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지난 10여년간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위기를 한국의 경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도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정책의 근본 노선은 동일합니다. 다만 그 정책을 실행하는 태도가 달랐을 뿐입니다”라는 장하준 교수의 지적은 현재 한국의 문제를 지난 몇 개월의 문제로 치환해 바라보는 시각에 대안이 부재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이리 가자, 저리 가자는 식으로 방향성을 제시하며 깃발을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사실 그런 일은 지금은 누구라도 할 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건강보험 문제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에 더없이 중요하다. 지금 건강보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게 이 문제의 유일한 대안이고 해결책이라는 말이다.

04. 섹시하게 들여다 본 세상의 이면들

<지식ⓔ> EBS 지식채널ⓔ 지음/북하우스 펴냄

<지식ⓔ>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난다. 몇분 되지 않는 방영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꼼짝도 안 하고 TV 앞에 앉아 있었다. <지식ⓔ>는 침묵의 힘을 알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말 대신 문장(‘글’이라고 할 정도로 길지도 않다)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동영상으로, 무엇보다 대담하고 섹시한 편집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박지성처럼 성공한 누군가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있지만 <지식ⓔ>를 기억하게 만든 건, 우리가 지나쳤던 현실의 장면들을 알게 하고 때로는 그 가해자가 우리 자신은 아닌지 돌아보게 만드는 순간들이었다. 광우병 문제를 다룬 <17년 후> 파문으로 지금까지 프로를 만들어온 PD가 바뀐다니 앞으로는 뭘 기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지식ⓔ>의 짧은 단상들은 책 3권으로 묶여 나오면서 풍부한 해설을 곁들였다. 영상으로 즐길 때만큼의 몰입도는 없을지 몰라도, 다시 또다시 읽을 만한 이야기들에 부가적인 설명이 더해졌다는 사실은 방송을 본 당신에게도 이 책을 꼭 권하게 만든다. 게다가 쉽다! 쉽고 재미있게 세상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정말 섹시하지 아니한가. 책이 3권쯤 되면 헐거워질 법도 한데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다 찌릿거린다. 첫 이야기 <이그Ig>가 배꼽을 잡게 하더니 <17년 후> <두바이의 꿈>에 이르러서는 잠시 책장을 덮고 생각하게 만든다. 요즘 같은 막장 주식시장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로만 들리지만 워런 버핏의 그 유명한 가치투자 이야기도 흥미롭다. “투자원칙1. 돈을 잃지 않는다. 투자원칙2. 첫 번째 원칙을 반드시 지킨다.” 하. 하. 하. 하지만 웃을 수만은 없는 추신이 곁들여 있다. 워런 버핏 편 마지막에 붙어 있는 “2008년 초 워런 버핏이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05. 속지 않는 게 이기는 거다!

<권력을 이긴 사람들> 하워드 진 지음/문강형준 옮김

하워드 진의 말을 빌리면, 미국은 많은 면에서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는 상당히 많이 부족하다. 헌법이 소수의 부유하고 힘있는 집단(노예소유주, 상인, 땅 투기꾼)에 의해 만들어졌던 건국 초기부터 정부는 거의 언제나 부유한 계급의 이익을 위해 움직여왔고, 보통의 미국인들보다 대기업들에 우호적인 법들을 통과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에서 소수자, 약자가 권리를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권력을 이긴 사람들>은 미국의 현대사를 다시 생각하는 작업이다. 9·11 직후 “테러리스트들,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을 숨긴 국가들을 구별해 다루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의 결과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키스탄과 예멘의 목표물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이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음을 맞았다. 9·11 직후 수잔 손택이 했던 말(“다같이 슬퍼하자, 그러나 다같이 바보가 되지는 말자”)처럼 꼭 강해지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었음에도 그렇다. 게다가 9·11에서 목격한 끔찍한 죽음과 고통의 장면들은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현실이었고 그 현실은 미국 정책의 결과였다. 그들 중 일부가 조용한 분노를 넘어 테러리즘을 향해 나아간 결과가 9·11이다. <권력을 이긴 사람들>은 무엇보다 재미있게 잘 읽힌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적절한 길이로 풀어냈다. 피부에 와닿는 하워드 진의 서술은 그 자신이 ‘정당한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폭격 임무를 담당한 군인으로 행한 무수한 폭격의 결과에 대해 뼛속 깊이 반성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짓말하는 정부에 국민이 왜 속아넘어가는지를 고찰하는 25장 ‘정부는 거짓말한다’는 특히 재미있다.

06. 암살당하고 싶지 않다면…

<임기종료> 빈스 플린 지음/랜덤하우스 펴냄

부패한 정치인이 연달아 암살된다. 스릴러물에서는 딱히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미국 스릴러 소설에서는 부패했건 부패하지 않았건,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암살이 수시로 이루어지니 말이다. 그 암살의 이유가 정말 ‘부패해서’라면 어떨까. 빈스 플린의 <임기종료>는 소설만이 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해 정부의 예산 정책과 무능에 분노한 세력이 정치권을 규탄하는 형태로 조직적인 암살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미국 대통령 스티븐스의 임기 종료가 1년 남아 있는 상황에 예산안 인준을 놓고 정치세력간에 팽팽한 긴장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강력한 정치인 셋이 암살된다. 범인에게서 온 편지가 놀랍다. “의원들을 살해한 것은 대통령과 상하원 의원들에게 보내는 경고다. 예산 적자를 감수하며 지출을 늘리고 당파정치를 하던 시절은 끝났다.” 나라가 빚더미에 올라앉아 파산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흘려듣는 게 정치인뿐이라니, 이거 진짜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단 말이지. 정치를 똑바로 안 하면 의원이고 대통령이고 없애버리겠다는 위협은 위험한 발상이지만 어느 정도는 속시원한 대리 만족을 주기도 한다. 작가의 데뷔작이기 때문에 상투적이고 엉성한 부분도 있지만 설정 하나만큼은 화끈하기 그지없는 소설.

07. 병역거부자들의 진솔한 육성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전쟁없는 세상, 한홍구, 박노자 지음/철수와영희 펴냄

육군 병장으로 제대한 내 남동생은 아직도 유승준을 곱게 보아넘길 생각이 없다. 가장 좋은 나이, 젊음 한복판의 시간을 뎅강 잘라내 나라를 위해 바치는 일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올림픽 야구대표팀이 갑자기 불쇼(한기주는 자기가 타자인 줄 알았겠지)에 역전쇼를 펼쳐가며 전승으로 우승을 거두게 만든 안간힘 중 하나가 군 면제라는 사실을 욕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군대를 기꺼이 가거나 기피하거나의 문제와 병역거부자 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을 알려주는 책이 바로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다. 병역거부자들의 글을 묶어 내놓은 이 책은 30여명의 병역거부자가 보낸 수감시간인 총 37년, 대략 1만3500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징병제보다 오랜 병역거부의 역사, 군사주의와 대중문화 이야기부터 감옥에서의 삶과 수감자 가족의 이야기가 진솔하게 펼쳐진다. 즉 박노자가 쓴 1장 ‘군대 가야 진짜 남자가 된다?’와 한홍구가 쓴 5장 ‘한국의 징병제와 병역거부의 역사’를 제외하면 병역거부로 옥살이를 한 사람들이 쓴 에세이인 셈인데 이 글들을 읽다보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책임을 다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국가권력으로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억압하고 또 그나마 있는 권리에 비해 과도한 책임과 의무를 짊어지게 하는 것,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실,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약자의 희생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이제 그러한 시대는 아니라고 봅니다”(오승록, 2007년 11월 현역 군인이다 병역거부를 선언, 현재 여주교도수 수감 중)라는 글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은 비단 병역거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08.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주리

<정본 백석 시집> 백석 지음, 고형진 엮음/문학동네 펴냄

대통령이 햇볕정책마저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이러다 북한으로 건너간 문인들의 책에 ‘다시’ 판금조치라도 떨어지는 건 아닐까. 이 걱정은 기우였으면 좋겠다만, 부디 이 김에 많은 사람들이 백석 시집을 한권씩 사서 읽으면 좋겠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식으로 말하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주는 아름다운 시가 가득하므로 외롭고 쓸쓸하고 감상적이 되는 밤에 아껴가며 한편씩 꺼내 읽으면 소름이 돋는다. 학교에서 배웠던 백석은 잊고 다시 백석을 읽으시길. 당나귀가 우는 ‘응앙응앙’ 소리에 밑줄을 그으면서 알지 못했던 시상이 교복을 벗고 난 지금에야 아름답게 펼쳐진다. <정본 백석 시집>은 백석의 정본과 원본을 확립해 우후죽순이던 백석의 시 표기를 바로잡고, 현대어로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도록 만들어졌다. 기다란 시행을 가능한 한 살릴 수 있는 편집 방식도 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일을 돕는다. 백석이라는 이름과 동시에 떠오르는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는 백석이 썼던 그대로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로는 새롭게 읽힌다. “(전략)눈은 축축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언제벌서 내속에 고조곤히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것은 세상한데 지는것이아니다/세상같은건 더러워 버리는것이다//눈은 푹푹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 응앙 울을것이다.” 맨 마지막에 수록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南新義州柳洞朴時逢方)을 읽기 전에는 소주를 먼저 한잔 하도록 하자.

09. 우화의 틀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다

<사이버리아드>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오멜라스 펴냄

SF소설. 폴란드 소설가 스타니스와프 렘이 쓴 우화형식의 연작 단편집이다. <솔라리스>에서 철학적 깊이를 보여준 스타니스와프 렘이 우주를 무대로 코미디를 펼쳐 보인다. 사이버리아드라는 제목은 ‘사이버’와 ‘일리아드’의 합성어인데, 이 책의 무대가 되는 우주는 왕과 신하, 왕자와 공주처럼 서양 중세를 연상시키는 공간이며 주인공은 의인화된 로봇이다. 트루를과 클라포시우스는 우주에서 제법 명성있는 창조자 로봇이다. 그들이 만드는 주문제작형 기계들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진다. 로봇 창조주인 셈인데 황금이나 흥미로만 일을 한다. 이 책 초반 두 로봇의 만담은 꽤 코믹하지만 뒤로 가면 웃음은 줄어들고 성찰의 단초가 되는 이야기들이 각 단편을 묵직하게 만든다. 특히 우화의 틀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는 이 책의 매력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은데, 그 정체를 알 수 없으나 끔찍하고 무거우며 절대 없어지지 않는 ‘그것’을 해치우기 위해 관료제를 이용한다거나 ‘반역의 국유화’같은 발상은 렘의 우주적인 철학과 유머감각이 시간을 초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실감하게 해준다.

10. 진정한 공포의 도가니탕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콤 켈러허 지음/고려원북스 펴냄

한때 ‘미친소’ 개그는 전 국민을 웃음의 도가니탕에 빠뜨렸지만, 이제 미친소건 도가니탕이건 웃음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영국에서의 광우병 사태를 살펴보면 광우병 문제는 발병 확률로 낙관해서는 안 되며 실제로 사망자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건 너무 늦은 때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광우병 파동으로 많은 해외 광우병 관련 서적이 번역 소개되었고, 나아가 육식 문화를 비롯한 먹을거리에 관련된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는데 확률이 어떻다는 말만 믿을 게 아니라 몇권 사서 읽는 게 좋다. 광우병은 괴담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의 시작은 <X파일>에서 보았음직한 기묘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2003년 미국의 어느 소도시에서 소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생후 아홉달 된 수소는 한쪽 뇌가 도려내어져 없어졌고 생식기도 뽑힌 채 사라져 있었다. 양쪽 눈은 물론 혀도 온데간데없었으며, 목근육의 깊은 곳까지 도려내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처치는 예리한 수술도구에 의한 것으로 보였다. 유사한 사건이 몇건 더 일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지역에서 소해면상뇌증(BSE)이라고 불리는 광우병이 북아메리카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 이 두 사건 사이에 상관관계는 없는 걸까? 미국 정부는 시민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는 12월23일에 첫 번째 BSE 발병을 발표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은 영국에서 미국에 이르는 광우병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국가 발표만 믿고 살았다가 큰일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다분히 현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재확인시켜주는 건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