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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믿지 말자
2001-11-14

김봉석의 이창

● 미국 동시테러가 일어난 지도 벌써 두달이 지났다. 이젠 전쟁, 혹은 일방적인 공격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동시테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바라보는 나는 하나의 관객에 불과하다. 그걸 보는 나의 태도는 스포츠경기나 영화를 보는 것과 별 다르지 않다. 야구를 보면서 매일 선수들의 기록을 살펴본다. 누가 안타를 몇개 쳤고, 누구는 홈런을 쳤고. 그걸로 경기를 보면서 혼자 생각을 한다. 역시 저 선수는 지금 슬럼프군, 저 타자는 저 투수에게 너무 약해 등등. 영화를 볼 때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딥 블루 씨>를 보며, 역시 레니 할린은 순수한 액션영화를 만들어야 해, 라고 중얼거리는 등. 경마꾼들이 말의 상태를 살피고, 과거의 전적을 분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테러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사마 빈 라덴의 이름이 나오고,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테러일 거라고 지목할 때 나는 믿기지 않았다. 아랍의 테러리스트들이 그 모든 것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실행이 가능하다 해도 미국의 정보기관이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이 가능할까. 눈치를 못 챘다 하더라도 한대가 충돌한 뒤, 다른 비행기들을 막는 것은 과연 불가능했을까. 빈 라덴의 이름이 그렇게 빨리, 가장 먼저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도 그가 테러를 했다는 분명한 증거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어쨌거나 진보적인 입장에서는 미국의 오만과 이스라엘의 강압이 결국 테러를 불러왔다는 분석으로,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테러’ 그 자체의 폭력성과 미국의 대응을 전하는 데 중심을 맞추고 있었다.

그 상황에 이르기 위한 국내 언론들의 정보는 거의 똑같았지만, 최근 일부 언론에 이런 ‘단서’들이 나왔다. 파키스탄의 정보부장이 해임되었는데, 이유는 이번 테러사건의 배후인 테러리스트에게 돈을 주었다는 것. 그는 테러가 있던 날 워싱턴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고, 올 초부터 미국 관리와 아프가니스탄 인사들과 함께 만나왔다. 빈 라덴 일가는 미국 정계의 인사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였고, 테러 보고를 받고도 부시는 태연하게 초등학교 연설을 마쳤다는 말도 있었다. 이런 분석도 있다. 미국은 90년대 중반부터 천연자원의 보고인 중앙아시아를 탐내왔고, 공동군사훈련을 하며 러시아를 자극할 정도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에 공을 들여왔다. 그런데 중앙아시아에서 석유를 빼낼 때 러시아와 이란을 피하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을 통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친미정권을 세워야 할 분명한 이유가 이미 있었던 것이다.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이건 음모론이다. 어떤 사건에 대해, 모든 것이 철저하게 계획된 모종의 음모라고 보는 시각. 이번 사건은 ‘절대로’,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결론으로 정리되지는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테러를 절멸시키기 위한 자위행위였다고 미국은 주장할 것이고, 일부에서는 원인제공을 한 미국의 과잉방어라고 비판할 것이다. 그러나 원론에서 벗어나는 몇 가지 단서들이 발견될 때, 개연성이 떠오를 때 필연적으로 음모론이 나오게 마련이다. 얼마 전 나온 <음모의 지배계급 300인 위원회: 보이지 않는 세계정부>라는 책의 주장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음모’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들이 발견될 때마다 되뇌게 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언론에서 말하는 것들은 늘 한결같다. 수많은 정치경제 스캔들의 내막이 제대로 밝혀진 적이 있던가? 언론에서 그것들을 끝까지 추적한 적이 있던가? <그것이 알고 싶다> <추적 60분> 같은 프로그램에서 ‘고발’하는 것말고는 더이상의 ‘진실’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런 ‘진실’들이 순순히 세상의 빛을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그런 진실이 과연 있을까, 라고 자주 생각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공중 매체를 통해 나 개인이 얻은 정보만으로는 도저히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나는 판단에 필요한 많은 정보를 얻고 싶다. 그리고 가급적이면 서로를 부정하는, 다른 정보를 얻고 싶다. 하지만 과연 가능할까? 정보의 진위조차 판단하기 힘든데. 인터넷은 정보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고 흔히 말해왔지만, 오히려 믿기 힘든 것은 이미 권력을 가진 기존의 대중 매체들이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안 볼 수도 없고, 소시민으로서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비겁하고 소극적인 것이다. ‘아무것도 믿지 말자.’ 정부가 발표한 것은, 언론이 떠들어주는 것은.

김봉석/ 영화평론가 lotusi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