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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열일곱. 서른셋.
김도훈 2008-10-31

“최진실 자살했대. 숙소에서 나올 때 아이디 카드 좀 갖다줘.” 부산영화제 데일리 출장 둘쨋날이었다. 아침 일찍 휴대폰을 울린 주성철 기자의 문자는 아리송했다. 최진실이 자살했으니 아이디 카드가 필요하다는 건가. 그게 아니면 최진실은 자살했고 그와 상관없이 아이디 카드는 필요하다는 건가. 그나저나 최진실이 죽었다는 건 농담인가. 그게 농담이라면 주 기자는 왜 그런 농담을 한 건가. 미친 건가. TV를 켰다. 최진실은 정말로 죽었다. 압박붕대로 목을 매고 죽었다. 데일리팀은 취재를 해야 했다. 최진실의 죽음이 부산영화제 개막식에 미치는 영향은 뭘까요. 영향이 없지는 않았다. 개막식에 근사한 드레스를 휘감고 온 여배우들은 누구도 이를 드러내고 웃지 않았다. 기획사들로부터 엄명이 떨어졌단다. 웃는 건 좋지만 이를 드러내지 말라. 미백과 임플란트 시술비가 아까운 일이었다.

영화제는 끝났다. 최진실의 죽음은 끝나지 않았다. 언론은 추모를 하면서 이유도 캐느라 윤리적 아노미 상태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사회자가 검은 상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상갓집을 24시간 버라이어티 쇼처럼 실황중계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셀러브리티 스타일리스트가 패널로 나와 ‘베스트 & 워스트 상복 드레서’를 선정할 것 같았다. 속이 답답하고 애달프고, 또 지겨웠다. 죽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최진실의 죽음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때쯤 전화를 받았다. “저는 XXX 여자친구예요.”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의 단짝이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2년 전이었다.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3년 만에 마포 어딘가에서 만나 삼계탕을 먹으며 정성일 이야기를 했더랬다. 그는 증권사에 다니고 있었고 정성일 팬클럽의 열혈 회원이었다.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전화드렸어요. 그 사람. 자살했어요.” 갑자기 전날 신문의 경제면이 오버랩됐다. 교보증권 직원 신림동 모텔에서 홀로 목매달아 자살. 신문 활자들이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겹치기 시작했다. 베르테르 효과. 고객의 손실보전 문제로 스트레스받아. 증권가 뒤숭숭. 결혼을 앞둔 채 자살. 머리가 뒤숭숭했다. 이미 발인도 끝나 있었고 기사는 어디에나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영화제 시작 직전 내 회사 블로그에 댓글을 달았다. “조만간 한잔 제대로 빨아보자.”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원대한 대탈주를 꿈꿨다. LA 건스니 건스 앤 로지즈니, 머틀리 크루니. 열일곱살 우리는 LA 메탈에 빠져 있었고 LA는 천국 같아 보였다. 우리는 보충수업 시간에 붙어 앉아서 장장 일주일에 걸쳐서 꼼꼼하게 탈출 계획을 세웠다. 먹을 것을 싸들고 부산항 무역선 컨테이너에 숨어들자. 참치캔을 많이 챙겨야 해. 컨테이너는 공기가 통하니까 어둠만 참으면 되겠지. 그렇게 한 보름만 견디면 LA에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염병할 한국의 고등학교를 떠나 천국으로 갈 예정이었다. 우리는 때를 놓쳤다. 열일곱의 LA와 서른셋의 LA는 전혀 다른 장소가 됐다. 우리는 LA가 천국이라고 믿을 만큼 우둔하지는 않은 나이가 됐다. 혹은, 어떤 이상향도 믿지 않을 만큼 우둔한 나이가 됐다. 어쩌면, 유일한 탈출구는 천국밖에 없다고 믿는 나이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