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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마니아] 홍콩의 신상옥, <천녀유혼>의 이한상
주성철 2008-11-07

<화피>를 보고 나오면서, 여전히 견자단은 멋있고 주신과 조미도 예뻤지만, ‘진가상 영화가 원래 그렇지 뭐’라고 투덜대며 돌아섰다. 참으로 아쉬운 작품이었지만 <천녀유혼>이 홍보문구에 계속 언급되는 것은 아마도 원작 <요재지이> 때문이리라.

‘중국의 <아라비안나이트>’ 혹은 ‘중국의 <전설의 고향>’이라 할만한 <요재지이>는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홍루몽> <금병매> 등과 함께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온 중국의 8대 기서 중 하나로 500여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요재지이>는 ‘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로 해석될 수 있는데 요재는 바로 작가 포송령의 서재 이름이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하자면 선녀, 귀신, 여우를 비롯해 각종 사물의 정령 등이 주로 등장하는 신비스럽고 초현실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국영, 왕조현 주연의 <천녀유혼>(1987)도 <요재지이>의 (극중 왕조현의 배역 이름이기도 한) ‘섭소천’ 편에서 왔고, <화피> 역시 해당 단편이 실려 있으며, 호금전의 <협녀>(1969)도 바탕이 된 단편이 같은 제목으로 실려 있다. 그외 수많은 단편들이 영화화됐으며, 단골 에로영화 소재가 되기도 했다. 산동성 출신의 포송령은 벼슬길로 나아가는 게 목표였지만 겨우 말단 공무원 정도밖에 되지 못했는데, 어찌 보면 <천녀유혼>의 세금 수금원 영채신(장국영)의 모습이 그와 비슷할 것이다.

<천녀유혼> 얘기를 더하자면 그 역시 오래전에 영화화됐다. 쇼 브러더스의 이한상 감독(사진)이 <요재지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1960년에 이미 영화화했던 것(국내에도 DVD 출시돼 있다). 1927년에 태어나 1996년에 세상을 뜬 이한상은 <설리홍>(1956)으로 데뷔한 뒤 쇼 브러더스의 ‘전설’로 활동했다. 호금전과 장철에 비해 덜 알려지긴 했지만 만드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했고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며 홍콩영화계의 기초를 다진 사람이다. 우리로 치자면 ‘홍콩의 신상옥’ 정도로 비유할만 하다. 서극이 <양축>(1994)으로 리메이크한 고전 <양산백과 축영대>(1963)로 당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던 사람도, <동방불패> <신용문객잔> <동사서독>보다 앞서서 <홍루몽>(1977)으로 임청하에게 맨 처음 남장 연기를 시킨 장본인도 바로 그였다. 내용은 다르지만 정소동의 <연의 황후>가 원제목을 따온 <강산미인>(1958)도 그의 작품이다.

이한상은 자신의 창작 작품보다 중국 고전이나 역사적 사건을 영화화하는 데 더 일가견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의 영화들은 남다른 재미를 갖추고 있었다. 프로덕션디자인 등 스튜디오 안에서 우아한 실내극을 연출하는 솜씨는 당대 후배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무간도> 시리즈의 ‘중졸감독’ 유위강은 한참 어렸을 때부터 쇼 브러더스의 스튜디오를 기웃거리며 영화 일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바로 이한상이다. 그 역시 유위강처럼 특별한 교육기관을 나온 건 아니었지만 영화 현장에 관한 통솔력과 테크닉 모두를 꿰뚫던 장인이었던 셈이다. 과거 작품의 리메이크나 오마주의 계보가 미진한 한국영화계로서는 참 부러운 세대간의 교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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