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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펄럭이는 귀

항상 그렇다. 이제는 적당히 여유를 가질 듯도 싶은데 아직도 그렇다. 경력을 말해주는 시간도 많이 흘렀고 몸으로 체득한 경험도 꽤 많다. 이제는 매일하는 작업이니 숙련의 몸으로 들어서야 하는데도 나는 항상 초보자의 몸과 마음이다. 표지촬영이 있기 전날이면 나는 잠을 설친다. 머릿속은 온갖 사진들로 꽉 차고 계속되는 이미지의 반복적인 떠오름이 숙면을 방해한다. 머리는 복잡해지고 상상으로 날이 샌다. 모든 네모난 것들은 사진 프레임으로 보이고 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은 내 사진의 평론가로 보인다. 그렇게 상상으로 촬영하는 날이 시작된다.

표지촬영을 마친 뒤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서면 한동안 멍해진다. 촬영을 하는 동안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어떠한 모양이었는지, 배경은 어떠했는지, 컨셉은 생각대로 되었는지, 촬영하는 동안 기술적인 실수는 없었는지 등등의 떠올라야 할 기억이 지워진다. 촬영 전에서 촬영이 끝난 시점으로 휘리릭~ 순간이동한 느낌이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사진이 좋고 나쁨이 기억이 나지 않으니 속은 편하다. 물론 컴퓨터에 앉으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모니터에 하루 종일 사진을 띄우고 내려놓고를 반복하고서야 표지를 결정한다. 그렇게 결정된 사진이 표지로 만들어지면 남의 말에 민감하고 쉽게 믿으며 줏대도 별로 없는 항아리만한 얇은 나의 귀가 펄럭거린다. 회사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반응을 살피고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애쓴다. 회사가 아니더라도 그냥 아는 사람들을 만나도 질문을 던진다. “멋지다”는 칭찬을 은근히 기대하면서 “사진 왜 그래요?”라는 소리를 걱정하면서 펄럭이는 귀에 온 감각을 동원한다. 별말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사진 좋지? 괜찮지?”라는 질문을 계속하면서 “좋네요”라는 대답을 나름 귀엽고 예쁜 눈을 만들어가면서 유도한다. 원하는 대답을 들으면 입꼬리가 하늘로 올라가며 돌아선다. 귀찮게 좋은 말만을 강요당한 분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함을 전한다. 언제까지나 그렇게 좋은 말을 동냥하듯 해줄 것 같던 벗들이 나의 곁을 떠나는 순간은 상상도 못했지만 그런 날들이 종종 있다. 평생직장이라는 환상을 가졌던 나의 우둔함이었을까. 그저 성공하라는 말뿐인 내가 궁색하다.

사람과 대화하고 사람의 형태를 보고 사람의 시간감을 느끼며 사는 직업을 가져서인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꼼꼼히 바라보고 분석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알았던 그들의 얼굴엔 평화가 있었고 선함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또 장난기 가득한 순수한 아이들이 있었다. 이제는 비록 얼굴을 마주보고 질문을 던질 수는 없겠지만 항상 좋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상황들이 그들 앞날에 자주 일어나길 간절히 바란다. 그들이 떠난 아쉬운 자리는 나의 답이 정해진 질문을 받을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그들 또한 장난기 가득한 순수한 아이들처럼 자리를 지킬 것이라 믿는다. 나 또한 항상 그렇듯이 표지를 촬영할 것이고 항아리만한 귀를 펄럭거리며 질문을 할 것이다. 그들이 있기 전에서 그들이 없는 지금으로 휘리릭~ 순간이동한 사람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그 중간의 시간들은 나의 기억에 소중한 사진처럼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