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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봅시다] 호주판 진주만 사태 아세요?
장영엽 2008-12-11

다윈 폭격과 아보리진 등 <오스트레일리아>를 통해 본 호주 역사의 상처

<오스트레일리아>는 ‘다윈 폭격’과 ‘도둑맞은 세대’라는, 호주 역사의 가장 아픈 상처를 조명한다. 다음은 ‘제2의 진주만’ 사태로 불리며 2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다윈 폭격, 정부 정책에 따라 부모와 생이별하는 고통을 겪은 도둑맞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다.

1. 다윈 폭격

<오스트레일리아>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2월19일 아침, 일본의 해군 사령관 후치다 미쓰오가 이끄는 188대의 전투기가 호주 다윈시로 떠났다. 두달 전 진주만을 공습했던 바로 그들이었다. 당시 연합군과 대치 중이던 일본군은 티모르 침공과 자바 침공에 방해가 될 연합군 기지를 파괴하기로 결심하는데, 넓은 비행장을 갖춘 다윈 기지는 좋은 목표물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진주만 사태”라 불리며 호주에서 일어난 역대 공습 중 최대 규모로 기록된 ‘다윈 폭격’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군의 갑작스러운 공습이었다고 해도, 다윈 기지에는 피해를 줄일 몇번의 기회가 있었다. 일본군 전투기가 출발한 지 30분 뒤, 멜빌 섬의 해안감시대원과 배터스트 섬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던 신부가 다윈 기지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규모 함대가 북서쪽에서 다가오고 있다.” 다윈쪽은 이미 두번이나 경고를 받았지만, 키티호크를 비롯한 항공모함이 기지에 있다는 이유로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일본군의 대규모 공습에 대비할 수 있었던 다윈시의 마지막 기회는 이렇게 사라져버렸다.

호주의 무방비 도시는 일본 함대에 철저히 유린당했다. 대부분의 비행기는 이륙하지도 못한 채 파괴됐으며, 243명의 민간인과 군인이 목숨을 잃었다. 400명이 부상을 입고 그중 절반이 크게 다쳤으며 선박 8대가 침몰했다. 다윈 기지의 허술함은 일본군이 보기에도 한심할 정도였는데, 해군 사령관 후치다는 다윈 폭격을 “나구모 부대가 나설 만큼의 가치도 없었”던 전투로 기억했다. 공습은 순식간이었지만, 피해는 컸다. 식수와 전기공급이 중단되면서 인구의 절반이 다윈을 떠났고, 많은 사람들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호주 해군은 군인들에게 기본 물자를 공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2. 아보리진

‘아보리진’(Aborigine)은 18세기 당시 호주에 살던 토착세력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 단어는 순식간에 널리 퍼져 호주에 사는 모든 원주민에게 적용됐지만, 현재는 ‘수렵과 채집 위주로 생활하는’ 이들만을 아보리진이라 부른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나무를 비벼 불을 피우던 널라의 할아버지 킹 조지가 전형적인 아보리진이라 할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연을 맡은 아보리진 소년 브랜든 월터스

현재 호주 각지에 살고 있는 아보리진 수는 51만7천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호주 전체 인구의 2.6%에 이른다. 아보리진의 언어와 종교는 다양하다. 모든 지역을 포함해 200여개 이상의 언어가 남아 있고, 다양한 형태의 신을 섬긴다. 아보리진의 토속신앙은 구전으로 전해져왔으며, 가장 널리 믿는 신은 영화에도 등장했던 ‘무지개뱀’이다.

아보리진의 열악한 삶은 아직까지도 호주 정부가 풀지 못하는 거대한 문제로 남아 있다. 아보리진은 교육수준이 다른 국민에 비해 현저히 낮고, 의료시설을 접하기 어려워 질병에 걸릴 확률이 일반인의 두배 이상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2001년에는 호주에서 범죄의 희생양이 된 이들 중 24%가 아보리진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존 하워드 전 총리는 2004년 아보리진 커뮤니티에 대한 태도를 ‘민족자결’에서 ‘상호의무’로 바꿔 아보리진의 교육·건강·고용·가난 문제에 적극 대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벌어진 격차는 여전히 쉽게 좁혀지지 않고 있다.

3. 도둑맞은 세대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란 호주의 토착세력인 아보리진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아이를 말한다. 호주 정부가 ‘동화 정책’, ‘문명화 정책’이란 명분 아래 부모에게서 아이들을 빼앗아 백인 가정에 강제로 입양했기에 ‘도둑맞은’이란 명칭이 붙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혼혈인 널라가 경관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것 역시 이 정책 때문이다.

도둑맞은 세대를 다룬 영화 <토끼울타리>

1915년부터 1969년까지 약 10만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헤어져 백인 가정과 선교 기관에 맡겨졌다. 이들은 집주인으로부터 성폭행 등 각종 학대에 시달렸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물과 알코올에 매달렸다. 그 결과 아보리진의 자살률은 일반 호주인들보다 두배 이상 높아졌고, 평균 수명 또한 17년 이상 짧아졌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후 ‘도둑맞은 세대’를 조명한 연구서적과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됐던 필립 노이스의 <토끼울타리> 또한 ‘도둑맞은 세대’에 대한 이야기다.

올해 2월13일, 케빈 러드 호주 총리는 국회의사당에서 ‘도둑맞은 세대’와 그 후손을 위한 공식사과문을 낭독했다. 동화 정책을 시행한 이래 호주 정부가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건 100년 만에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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