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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장 뤽 고다르, 파편들만 튀고…

그가 ‘만든’ 영화들은 못 본지 오랜데 그에 ‘관한’ 영화들만 나오는 현실

지난해 12월 프랑스에선 <장 뤽 고다르와 나누는 대화의 파편들>(Morceaux de conversation avec Jean-Luc Godard)이라는 제목의 두 시간짜리 다큐멘터리영화가 나왔다. 고다르는 작품의 내용이 입장권 한장의 값어치도 없다며 개봉에 반대했다고 한다. 이 파편들은 영화의 도시 로카르노와 각종 페스티벌에서 상영되기도 했는데, 프랑스 언론계는 이번에도 작품을 격찬할 것이 뻔하다. 왜냐하면 장 뤽 고다르에 관한 것을 비판하는 일은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 개봉작은 <네 멋대로 해라>를 만든 장본인이 문화적 정황에서 차지하는 아주 모호한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나는 2년 전 고다르를 인용한 경우를 찾을 수 있는 데까지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누벨바그를 테마로 해서 꾸민 홍콩의 한 진열장, 고다르의 작품으로부터 제목 및 모든 것을 인용해와 만든 그룹 ‘국외자들’(Bande a part/ 가운데 a위에 어퍼해주세요!)의 뮤직비디오, 또 동일 작품에서 이름을 따온 쿠엔틴 타란티노의 제작사 ‘A Band Apart’ 등이 그것이다. 또 언젠가 나는 멜버른에 있는 ‘알파빌’이라는 가게에 들러 스웨터를 하나 산 적이 있다. 거기엔 대문짝만 한 고다르 사진 하나가 붙어 있었다. 출판사들이 내게 보내오는 고다르에 관한 각종 서적, 보도기사, DVD는 물론이고 고다르의 <경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립스틱 광고 등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하여튼 내가 이 ‘조사’를 통해 내린 결론을 간단히 말하자면, 만 79살을 넘긴 영화인 고다르를 피해간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데 사실 고다르 작품의 인기가 수그러든 지 이미 20여년째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그의 작품 가운데 우린 기껏해야 제목 10개 정도를 떠올릴 뿐이다.

장 뤽 고다르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영화인 중 하나라는 건 분명하다. 그는 즉흥연기 같은 댄스장면, 부조리한 대사, 섬세하게 접근하는 배우의 육체 등을 통해 우리와 스크린의 관계, 공간, 색깔과의 관계를 새로이 규명했다. 특히 그의 초기 작품은 신선하고 자유로운 바람을 가져다주었다. 그 바람은 여전히 타란티노나 왕가위 혹은 박찬욱 감독 등의 현대영화에서 위세를 떨친다. 고다르의 작품세계가 좀더 어두워진 건 사실이지만, 그는 누벨바그 멤버 중에서도 에릭 로메르와 더불어 급진적인 과격함을 계속적으로 유지해온 유일한 영화인이기도 하다.

<경멸>을 만들 당시 “인생에서와 마찬가지로 영화에는 비밀도 없고 해명할 것도 없다. 체험하기만 하면 된다. 촬영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던 장 뤽 고다르. 이제 그는 모더니티의 해설자이자 이미지 사상가로 둔갑했다. 그 자신이 이미지 자체가 되는 지경에까지 말이다. 그의 외양과 목소리, 채찍처럼 내리치는 충고와 지적들은 TV방송사들을 더없이 행복하게 해주었다. 한마디로 오늘의 고다르는 말년의 말론 브랜도를 연상시킨다. 그는 스스로의 신화에 앉아 군림하는 스타, 우리가 만나보고 싶어 하는 스타,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에게만 몇 마디 말을 건네는 교주와도 같은 존재다. 고다르의 위엄과 명성을 유지해주는 건 그가 만든 최근 영화가 아니라 그가 던지는 말들이다. <장 뤽 고다르와 나누는 대화의 파편들>에서 고다르는 어느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유명하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중략) 혹자들이 나에 대한 책을 쓰고 저작권을 받고 있지만 그들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이 허위다.”

그러니까, 이번에 <장 뤽 고다르와 나누는 대화의 파편들>이 개봉됐다. 또 고다르에 ‘관한’ 새 영화다. 고다르가 ‘만든’ 영화를 극장에서 구경 못한 지 어언 5년째인데….

번역=조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