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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뒤안길] 의사들은 왜 소심해졌나

<하얀거탑>의 원작자 야마자키 도요코

영화 <하얀거탑>

해마다 한국의 TV 시청자를 들끓게 하는 MBC 연예대상. 그 논란의 중심이었던 <베토벤 바이러스>의 김명민은 2007년에도 <하얀거탑>으로 큰 사랑을 받았었는데 이 <하얀거탑> 원작은 야마자키 도요코라는 일본 여류작가의 소설이다. 이 소설은 1963년 주간지 <선데이 마이니치>의 연재소설로 첫선을 보인 뒤 1967년 영화화되었고, 2003년에 이르기까지 4번 드라마화되었다. 그 4번째로 만들어진 드라마가 2003년에 방영되었다는 사실은 (주간지 발표이래)40년이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일본 대학병원의 관료주의나 페쇄성 같은 문제가 여전했다는 뜻이다.

일본 대학병원의 봉건적 관료주의는 여전하지만 의료 과오에 대처하는 태도에는 요 몇년간 약간 변화가 있었다. 2005년, 제왕절개수술 도중 의료과실에 따른 환자 사망사건으로 의사가 체포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후 일본에서는 의사들이 새로운 치료에 과감히 도전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하얀거탑>의 주인공 자이젠고로(한국판에서는 장준혁)가 의료 과실과 관련한 재판에서 패소한 뒤에 기자들에게 이렇게 소리지르는 장면이 있다. “앞으로 많은 의사들이 적극적인 진료를 주저할 것이다.” 마치 현재 일본 의료계의 상황을 예언한 것 같다.

야마자키 도요코의 작품의 특징과 매력은 이런 리얼리티에 있다. 일본 4대 일간지 중 하나인 <마이니치신문>의 기자였던 그는 소설을 쓸 때도 철저히 취재를 한다. <대지의 아들>은 1945년 전후 주로 중국 만주에서 일본으로 돌아오던 일본인 중에서 시대적 혼란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중국에서 자랐던 이른바 ‘중국 잔류 고아’를 테마로 한 소설이다. 소설의 취재수첩 등을 묶은 <나와 ‘대지의 아들’>이라는 책도 출간되었는데 야마자키의 행동력과 취재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된다. 중국이 취재에 제한이 많은 나라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중국의 ‘노동개조소’(노동을 통해 사상교정을 하는 시설, 많은 중국 잔류 일본 고아들이 문화혁명 시기에 일본인의 자녀라는 이유로 여기 수용되었다)의 경우, 야마자키는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직접 취재에 성공했다.

<하얀거탑>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다른 작품들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야마자키의 작품은 긴데다가(거의 3권 이상), 특히 <하얀거탑>과 <화려한 일족>은 재판장면이 많다. 하지만 법률 알레르기가 있다 해도 안심하시라. 재판장면은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대목만 읽어도 소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