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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하여
2001-11-22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이 직업이란 게 꽤 고독한 일이라서 방황할 때가 많았다. 일방적으로 고객의 신상정보를 공유한 채 지속적으로 그들을 관찰할 수 있는 일이란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예전엔 고객에게 일방적으로 돈을 받기만 하는 이 과정이 무척 부담스러운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일종의 해소방법으로 대여점 문을 닫고 귀가하는 길에 24시간 편의점에 들러 필요없는 물건들을 마구 사는 습관이 있을 정도였다. 뒤늦게 현찰의 중요성을 깨달아, 이젠 그런 낭만적인 취미는 없어진 지 오래다.

대여점에 앉아 있다보면 고객의 면면을 관찰하게 되는데, 특히 커플이 함께 뭘 볼까를 정답게 나누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그들이 되고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사실, 남자친구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에게 이런 즐거움을 주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다. 그래서 한번은 집 앞에 있는 대여점에 가서 비디오를 빌려본 적도 있다. 역시, 상상할 때가 가장 좋은 법이다.

고상하게 나이 든 고객을 보면 더더욱 낭만적이 된다. 대개가 노인들은 영화를 즐겨보지도 않는데다 간혹 있을지라도 연체 개념이 없는 등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안 되는 특수한 세대인데, 그렇지 않은 점잖은 노인들을 만날 땐 ‘나도 저렇게 늙어야지’ 하는 경외감이 든다. 하지만 사람간의 관계로 점철된 이 직업을 지속하는 한 내가 그렇게 곱게 늙으리란 건 정말 착각으로 남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