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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부(끄)러워하면 지는 거야!
이다혜 2009-02-13

SBS TV <가문의 영광>

연애에 관해 가장 널리 알려진 속설 중 하나는 남자들은 ‘당신이 처음이야’에 약하고 여자들은 ‘당신이 마지막이야’에 약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물 언저리의 소녀들에게 전수해야 할 ‘작업에 대처하는 아가씨의 자세’를 3가지로 요약하라면 이렇다. 첫째, 뭘 해도 처음인 척해라. 둘째, 뭘 해도 처음인 척해라. 셋째, 뭘 해도 처음인 척해라. 하지만 TV드라마에서 흔히 ‘냉미남’ 캐릭터로 등장하는 ‘사랑을믿지않지만여자들의인기를한몸에받는바람둥이에돈과몸과얼굴이두루훌륭한싸가지없는나쁜남자’들은 ‘당신이 처음’이라는 카드를 그 어떤 내숭녀보다 능란하게 구사한다.

SBS 주말연속극 <가문의 영광>에서 ‘강단커플’로 불리는 이강석(박시후)과 하단아(윤정희)의 연애가 성공하기까지 벌어지는 일만 해도 그렇다. 한때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로 배우는) 재벌 2세와 결혼하는 법’을 충실하게 복습하는 이 둘의 작업의 순간을 살펴보자. 일단 드라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강석은 졸부 이천갑의 아들이다.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뼈대있는 가문 행세를 하기 위한 ‘족보 구입’에 발벗고 나서는 강석은 하씨 종갓집 막내딸 단아와 계약연애를 시작한다. 이 둘이 계약연애를 하는 이유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강석의 여동생이 단아를 짝사랑하는 단아의 제자를 스토킹하기 때문. 10년 전 스물의 나이에 집안에서 맺어준 첫사랑과 결혼했으나 그 직후 교통사고로 청상과부가 된 단아는 나이 어린 제자의 짝사랑을 막기 위해, 강석은 여동생이 짝사랑에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사귀는 척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강석이 아버지의 명에 따라 단아 집안의 사업을 접수하기 위해 뒤에서 주주들을 회유하고 있다는 점. 둘의 연애가 진짜가 되어갈수록 강석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이른바 ‘다나까’ 말투를 구사하는 강석은 단아에게 “어린애 마음이나 설레게 하지 왜 나 같은 놈 건드립니까.” “어젯밤 입맞춘 놈과 마주하는 게 거북합니까?” “대체 정체가 뭡니까?”와 같은 주옥같은 명대사로 수작을 거는데, 그중 압권은 이른바 ‘당신이 처음’ 시리즈다. 박시후의 느끼한 듯 미끈한 생김새와 티없는 피부, 훤칠한 키에 아무리 눈이 돌았다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건 막을 수 없다. 박시후와 키스하는 윤정희가 부러운 한편 저런 대사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코앞에서 듣는 윤정희는 진정한 대인배.

강석: 나, 단 한번도 여자한테 뺨 같은 거 맞아본 적 없는 놈이었어. 그런데도 당신한텐 맞아줬어. 왜일 것 같아. 단아: 몰라요. 강석: 나도 그게 궁금해. 왜 저 여자한텐 맞아도 상관없겠다 그런 느낌이 드는지.

따귀를 맞은 것도 처음이요 따귀를 때리게 놔둔 것도 처음이요… 심지어 “내 커피 얻어마신 여자는 당신이 처음인데!”라는 걸 보니 처음하는 것투성이인 이 남자, 제 양말은 신을 줄 알까 걱정이 앞선다…만, ‘이건 네가 처음’이라는 말을 들으면 솔깃해지는 여자 마음은 어쩔 수 없다. (매일 숙박업소만 드나들었는지)“우리집에 와본 여자는 당신이 처음”, (이미 결혼 경험이 있는 남자임에도)“어머니가 물려주신 반지를 주는 건 당신이 처음”, (옆집 개도 아는 바람둥이임에도)“부모님께 인사시킨 여자는 당신이 처음”, (남자한테만 따귀를 맞아봤는지)“내 뺨을 때린 여자는 당신이 처음”과 같은 멘트를 날리는 남자에게 여자는 의외로 약하다. 냉미남이 인기있는 이유가 얼굴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모두에게 친절한 남자보다 나한테만 친절한 남자가 특별하다. 하지만 ‘따귀 한대 치면 그놈은 나의 노예~♡’는 어디까지나 TV 속 이야기.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