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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기자클럽] 오, 환타스틱 70mm

내가 올해 베를린에서 경험한 최고의 시간과 최악의 시간

제5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거리 풍경. 대다수 언론들의 혹평 속에 회고전으로 선보인 70mm영화들은 관객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찰스 디킨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다”. 디킨스가 2009년 베를린영화제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올해 베를린영화제를 표현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듯하다.

최악의 시간은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이었다. 영화제 위원장 디이터 코슬릭의 8년 재임기간 중 최악으로, 올바른 사회적 이슈 중심의 작은 규모 영화들의 성찬이었다. 일반 관객이라면 거의 보지 않을 법한 이런 영화들을 정당화해준 것은 (영국 여배우 틸다 스윈튼이 이끈) 심사위원들이었다. 그들은 창의적이거나 뛰어난 영화에 상을 주기보다 정치적 선언을 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듯했다. 금곰상은 음부에서 감자가 자라는 불쌍한 여자에 관한 페루영화에 돌아갔다.

특별심사위원상은 사르디니아에서 휴가를 보내는 자기 강박적인 젊은 커플을 그린 독일영화와 말수가 적은 슈퍼마켓 경비원에 관한 어두운 우루과이영화에 돌아갔다. 한 프랑스 신문은 “베를린은 이제 칸과 베니스와의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졌다”고 보도했다. 한 독일 신문은 베를린영화제를 “영원한 2등”이라 부르며 칸에 최근작을 보내기 위해 베를린을 유보한 유명 감독들의 명단을 실었다. 그렇지만 올해 베를린은 가장 기억에 남을 최고의 시간이기도 했다. 파노라마와 포럼 섹션에 숨어 있는 여러 편의 영화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올해 회고전 ‘70mm? 실제보다 더 크게’ 때문이었다. 큐레이터 라이너 로더가 선정한 21편의 영화들은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TV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멀티채널 사운드와 하이 데피니션 필름의 대형 영화들을 제작하던 시대(주로 50년대와 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들이었다. 그중 몇몇은 음악으로 된 서두부와 중간 휴식시간이 있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이벤트 영화’인 셈이다. 70mm영화는 일반 35mm영화보다 두배 넓은 필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포맷의 영화들은 근접할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을 안겨준다. 어마어마한 심도와 디테일, 그리고 넷이나 여섯 채널의 사운드트랙은 오늘날의 매끄러운 돌비 사운드와는 매우 다른 즉각적인 느낌을 준다.

매일 저녁 다양한 연령층의 팬들은 동베를린의 오래된 키노 인터내셔널 극장과 포츠다머 광장에 새로 문을 연 시네스타 극장을 꽉꽉 채웠다. <벤허>(1959), <바운티 호의 반란>(1953), <클레오파트라>(1963), 네편짜리 7시간 길이의 러시아판 <전쟁과 평화>(1965∼67) 같은 사극,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 <사운드 오브 뮤직>(1965)과 <스타!>(1968) 같은 뮤지컬,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 같은 고전이 관객을 다른 시대로 인도했다. 모든 영화들이 복원판이거나 (<벤허>처럼) 호주에서 공수되어온, 드물게 남아 있는 70mm 프린트를 통해 원래 모습 그대로 상영됐다.

매일 저녁이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완벽한 엔터테인먼트. 관객은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세트에 갈채를 보냈고, <클레오파트라>의 (디지털 효과가 전무한!) 거대하고 화려한 세트에 숨을 죽였다. 영화가 정녕 영화였던 시대로 함께 떠나는 여행 같았다.

유명한 소련 감독 알렉산드르 도브첸코의 부인 율리아 솔츠제바가 만든 소비에트 2차 세계대전 영화 <불타는 시대의 이야기>(1961)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중국 혁명기 드라마처럼 영웅적이고 애국적인 주인공들이 나오는 선전선동 영화지만, 시각적 혁신과 예술적 상상력의 도약이라는 면에서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된 어떤 영화에도 뒤지지 않았다. 관객은 경이로움에 말을 잃고 비틀거리며 추운 베를린 밤거리로 걸어나와야 했다. 페루산 감자나 영화학교의 관성은 한치도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하고 대담하고 진정으로 진보적인 영화 만들기.

번역=이서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