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변증법의 여정을 거쳐, 고향으로
2001-11-22

크랜베리스(Cranberries) 5집, (Wake Up And Smell The Coffee)

아일랜드 밴드 크랜베리스(Cranberries)가 5집을 내놓았다. 크랜베리스는 스미스(The Smiths)로 대표되는 1980년대 인디 기타팝을 자양분으로 하여 드림팝, 포크, 켈트음악, 팝을 뒤섞은 독특한 음악세계를 펼쳐온 모던 록밴드다. 멜로디가 돋보이는 서정적이고 경쾌한 음악을 단아하게 갈무리해왔다는 설명이 불충분하다면, 록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팝의 친화력을 보여왔다는 간편한 표현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크랜베리스의 트레이드마크는 돌로레스 오리어던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꺾기 창법이다. 제목은 잘 몰라도 들어보면 단번에 ‘아, 이 노래’ 하게 될 <Dreams>, <Ode To My Family>, <Zombie> 등의 히트곡 탄생의 팔할은 그녀의 유니크한 보컬 덕이다. 이들은 1993년과 이듬해 내놓은 1, 2집의 엄청난 성공으로 국제적 스타의 지위에 올랐고, 세계적으로 총 3천만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그 여파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들의 곡은 CF나 TV 드라마 등에 배경음악으로 자주 나왔다. 또 오리어던의 창법은 여성을 간판으로 내세운 그룹의 전범이 되었다(주주클럽은 ‘한’ 예에 불과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수록 추종자들이 벌떼처럼 모인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2년 만의 신작인 <Wake Up And Smell Coffee>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로 그 크랜베리스표 음악을 들려준다. 이는 이들도 이제 데뷔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1990년대 후반의 행보가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1996년에 낸 3집은 어둡고 거친 사운드와 강도 높은 사회적 가사에 집중했으나 음악적 욕심에 못 미치는 반응을 얻었고, 이에 1999년 다시 밝게 포장한 4집은 상업적인 참패를 불러왔다.

1, 2집에도 참여했던 스티븐 스트리트(Stephen Street)를 다시 프로듀서로 맞이하여 작업한 결과물은 1990년대 초반 크랜베리스의 본연으로의 회귀이다. 물론 록적인 곡이 없는 것은 아니다. <This Is The Day>는 거칠고 절도있는 모습이고, 타이틀곡은 성마른 기타 음색과 딱딱 끊어지는 리듬을 앞세운 서사적인 구성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곡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첫 싱글 커트곡이 <Analyse>란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1집의 히트곡 <Dreams>의 경쾌한 사운드를 빼닮은 이 곡은 낙관적인 가사와 함께 이번 앨범의 본령을 일러준다. 건반과 어쿠스틱 기타의 단아함 위에 부드럽게 속삭이는 듯한 보컬이 얹혀지기도 하고(<Never Grow Old>), 다소 몽환적으로 출렁이는 반주와 달콤한 오리어던의 노래가 영원히 반복될 것처럼 진행되기도 한다(<Pretty Eyes>). REM의 곡을 연상시키는 <I Really Hope>는 1980년대 쟁글팝을 리모델링한 트랙이다. 숙취상태인 오리어던을 스튜디오로 밀어넣어 모든 멤버가 라이브하듯 녹음한, 그래서 자연스럽고 감성의 파동이 생생한 <Chocolate Brown<은 이 앨범의 숨은 백미일 듯하다.

참고사항일 뿐이지만, 크랜베리스의 이번 5집은 같은 아일랜드의 거물 밴드 U2가 1년 전 이맘때 내놓은 신보를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음악적 탐색의 여정을 마치고 본래의 사운드로 돌아간 점에서 그렇다. 크랜베리스는 지난 4집의 불완전한 시도를 이번에 제대로 매듭지은 것 같다. 그래서 귀에 착 달라붙는 노래와 상큼하고 오밀조밀한 사운드는 더 섬세하고 완숙해졌다. 변증법으로 비유하자면, 5집으로 이들은 정(正)과 반(反)을 거쳐 이제 (원래의 정에 가까운) 합(合)에 이른 듯하다. 또 다른 자기부정을 예비하는(유니버설 발매). 이용우/ 대중음악평론가 pink72@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