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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꽃보다 그네
이다혜 2009-03-13

<춘향전> 송성욱 풀어 옮김, 민음사 펴냄 | <나무의 신화> 자크 브로스 지음, 이학사 펴냄

그네는 참 무서운 놀이기구다. 발을 세게 구를수록, 높이 올라갈수록,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그네에서 잡아채 땅바닥에 내리꽂을 듯한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그 찰나의 공포에 맛을 들이면 가장 높은 곳에서 몸을 날려 가능한 한 먼 곳까지 점프할 수 있게 된다. 꺄악! 그네를 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비명소리는 마치 간지럼 태우기를 당하는 듯 격렬하고 통제불가하다. 공포와 맞닿은 쾌락을 초단위로 만끽하는 것이다. 격렬하게, 멀리뛰기 배틀을 위해서 그네를 탔던 나는 대체 그네타기의 어느 대목에서 이몽룡이 그네 타는 춘향에게 반할 수 있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춘향전> 속 그네타기 장면은 이렇다.

“향단아, 밀어라.” 한번 굴러 힘을 주며 두번 굴러 힘을 주니 발밑에 작은 티끌바람 쫓아 펄펄. 앞뒤 점점 멀어가니 머리 위의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흔들흔들. 오고 갈 제 살펴보니 녹음 속의 붉은 치맛자락 바람결에 내비치니, 높고 넓은 흰 구름 사이에 번갯불이 쏘는 듯 잠깐 사이에 앞뒤가 바뀌는구나. (중략) “이애, 향단아. 그네 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아찔하다. 그넷줄 붙들어라.”

단오에 그네를 타는데 바람이 독할 것은 무엇이고 정신이 아찔할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그네타기를 졸업한 나로서는 어쨌건 교통정리가 잘 안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다 더듬어 찾은 기억 하나. 어려서 지방에 있는 한 절 근처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 그네가 있었다. 짚 같은 것을 문근영 팔뚝만하게 꼬아 라푼젤의 머리처럼 키큰 나무에 묶어놓은 그네에는 (고무가 아니라) 나무로 만든 작고 좁고 단단한 엉덩이 받침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 자크 브로스의 <나무의 신화>에는 그네타기가 전세계적인 오락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젊은 여자들은 나뭇가지에 매달아놓은 좁은 판자 위에서 몸을 좌우로 흔들곤 하였는데, 사람들은 이로부터 그네가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같은 행위에 대해 작가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들은 그네를 타는 행위가 성적 충동을 위장하는 것과 연관이 있음을, 특히 여성의 생식 기관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여자들은 충동을 위장함으로써 매우 강한 흥분 상태를 느꼈으며, 거기서 예상 밖의 쾌락을 맛보았다. 그네 타는 행위는 거의 세계 전역에서 등장하는 하나의 의례적 행위이다. 특히 인도에서는 앞뒤로 움직이는 그네의 움직임을 낮과 밤이 서로 교대하고 계절이 순환하는 시간의 리듬으로 간주하였다. 그 효력은 특히 봄에 잘 나타나곤 했는데, 봄은 재생을 기념하고 촉진시키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춘향이뿐 아니라 봄이 되면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는 말이다. 여자들은 그네에 엉덩이 딱 붙이고 엉덩이를 흔들거리며 높이, 너 높이 아찔하게 솟아올랐고 뭔진 모르겠지만(하하하!)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남자도 그네를 탔기 때문에 젊은 남녀가 단오를 빙자해 단오에 그네뛰기를 하면 거기서 눈이 맞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날고 기는 어우동도 때로 그네뛰기로 남자를 낚았다.

그러니 이몽룡이 그네를 타는 춘향이에게서 본 건 무엇이었을까. 속이 보일 듯 말 듯 나풀거리며 꽃잎처럼 흩어지는 치맛자락, 차갑던 귓불까지 데우는 봄의 훈풍, 무엇보다 그네 바람 때문에 즐겁고 아찔해진 그 표정이 아니었을까. 하악하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