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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만난 아시아감독 [6] - 박기용
홍성남(평론가) 2001-11-23

<낙타(들)>의 박기용 감독

일탈의 세밀화가 그려내는 무늬

<모텔 선인장>(1997)이 모텔 방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중심에 놓고 그 위에 여러 남녀의 에피소드들을 분산시켜놓았다면, <낙타(들)>에서 구심점은 두 남녀이고 모텔 방은 그들이 거쳐가는 여러 장소 가운데 하나(아마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장소, 즉 목표점일지도 모르지만)일 뿐이다. 데뷔작인 <모텔 선인장> 이후 무려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던 박기용 감독은 그렇게 전작의 구도를 변주하면서 또 그것과는 다른, 아주 인상적인 작품 하나를 들고 나왔다.

나이 마흔이 된 한 남자와 그와 같은 나이를 곧 맞게 될 한 여자가, 그래서 ‘마음이 무거운’ 그들이 어느날 ‘모험’을 감행한다. 사실 모험이라고 해봤자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일을 저질러 봤던 남녀들이 지나갔던 길을 그저 반복할 뿐이다. 그들은 서해안의 어느 작은 포구에 도착해서는 우선 약간의 대화를 나누고 기분을 돋워줄 술을 마실 수 있는 횟집, 둘이 좀더 밀착해 있어 키스를 나누게 되는 노래방, 어쩌면 이 코스의 클라이맥스일는지도 모르는 모텔 방, 그리고 아침 식사를 할 식당으로 이어지는 하룻밤 여행의 ‘정규 코스’를 무덤덤하게 밟아간다. <낙타(들)>는 바로 그 코스에 대한 세밀화와도 같은 영화다.

주인공 남녀(이들 외에 달리 나오는 사람도 없지만)를 따라가면서 박기용 감독이 가져간 것은 가벼운 디지털카메라(소니 PD-100) 한대였다. 그러고서 그는 마치 디지털카메라의 가벼움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카메라를 인물들로부터 한두발짝씩 물러나서는 비교적 정적(靜的)인 자세로 작동한다. ‘디지털적인 영화’의 핵심을, 박기용 감독은 카메라 움직임의 자발성보다는 배우들의 자발성 있는 즉흥 연기와 그에 대한 민첩한 대응에서 발견하는 듯하다. 그렇게 인물들을 향해 너무 침범해 들어가지 않는 카메라와 조금은 어색해서 오히려 생생해 보이는 인물들을 대면시킴으로써 영화는 삶의 리얼리티를 꼼꼼하게 끄집어낸다.

중년 남녀의 둔중한 일탈의 행보, 그 표면을 섬세하게 살펴보는 <낙타(들)>는 다 보고 나면 마음을 뒤흔든다기보다는 입 속을 깔깔하게 만드는 영화쪽이다. 진부한 삶에 지친 우리에게 그 쾌락없는 일탈은 어색한 친밀감을 안겨주고 아무 특색도 없는 회색의 공간들은 친근한 이물감을 안겨준다. 영화 말미의 약국장면에서 의사와 환자가 두통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그 두통약이 필요한 것은 영화를 보는 우리가 아니었나 싶다. 중년 남녀의 위험한 일탈을 다룬 그 많던 영화들은 왜 그것들이 아름답기만 했다고 지금까지 거짓말을 해왔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아프게 때려오니 왜 안 그렇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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