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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은의 돈워리 비해피] 인생, 뭐 있다
최보은 2009-03-20

멀쩡한 직장에 다니는 당신도 멀쩡한가

‘멀쩡한 직장을 때려치운다’라는 말들을 흔히 쓴다. ‘멀쩡한 직장’이란 무슨 뜻인가? 짐작건대 당분간 망할 염려가 없고,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월급을 꼬박꼬박 주고, 금상첨화로 남보기에도 그럴듯한 일터라는 뜻일 게다. 좋다. 그 직장은 멀쩡하다고 해두자. 그런데 멀쩡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멀쩡한가? 직장이 멀쩡한 한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재미없고, 아무리 스트레스 받고, 아무리 체질과 적성에 안 맞아도 절대로 때려치워서는 안되는가? 오히려 직장이 멀쩡할수록,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소모품일 가능성이 더 많지 않은가?

예를 들어, 내가 일했던 회사들은 다 그런 의미에서 멀쩡했다. 그러나 내가 그랬듯이, 그 안에서 같이 일한 20대들은 40대보다 더 영악한 처세술 칩을 내장한 채 50대보다 더 겉늙은 표정 속에 은신해 있다가는, 하루하루 시들어갔다. 그리고 아무리 그렇게 해본들 내가 앉았던 자리가 그랬듯이, 그들이 비운 자리는, 몇초도 안되어 메워졌다.

20대 초반에 입사한 민들레 같던 아가씨가, 연애다운 연애 한번 못하고 같은 일을 요일 단위, 주일 단위로 반복하며 십수년을 보낸 뒤, 40대가 다 되어서도 같은 사무실의 먼지를 마시며 “인생 뭐 있어”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다. 그럴 때, 나는 말하고 싶어진다. 인생, 뭐 있다. 말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만의 무언가가 있다. 누구에게나, 태어난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학벌과 직장 편력을 나열한 이력서 나부랭이와는 결코 바꿀 수 없는, 값진 것이다. 멀쩡한 직장에 다니면서, <예스맨>의 짐 캐리처럼 자위할 기력마저 상실한 사람들을 나는 너무도 많이 알고 있다.

나는 누군가가 사표를 낼까 말까 물어오면, 자신있게, 사표쪽을 권한다. 묻는 행위 자체에 이미 해답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대신 발음해줄 따름이다. 그것은 “멀쩡한 직장”에 대한 사표가 아니라, “내 인생을 너무도 재미없게 만드는 강고한 틀”에 대한 사표를 뜻할 뿐이다. 직장이 너무도 멀쩡한 나머지 그 안에서 자신이 멀쩡한지 어떤지 돌아볼 틈도 갖지 못하는 것은 자학행위라는 사실을 지적할 따름이다. 진심으로 누군가가 걱정된다면, 그가 돈을 벌고 있는지 아니면 백수인지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먼저 살펴야 맞을 것이다. 당장 돈을 못 벌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실제로는 챙겨주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후배가 직장을 때려치울 것을 걱정하는 어느 걱정 많은 편집장에게나 맡겨두시라. 없으면 없는 대로, 기똥차게 재미있게 살아갈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돈이 없으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눈을 크게 뜨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징검돌은 개울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의 눈에 뜨인다. 만약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사표를 쓴다면, 그에겐 이미 개울을 건너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내 글이 징검돌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어느 걱정 많은 편집장이 후배한테 조언이랍시고 했다는, 조심조심 가려 읽어야 한다는 유의 충고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경태씨, 대체 무엇을 어디로부터 어떻게 가리라는 말이죠?).

오늘은 지리산에서 바보로 사는 것이 얼마나 기똥차게 재미있는 일이었는지를 얘기하려고 했는데, 뒷간에서 우연찮게 잘 타지도 않는 잡지의 글을 읽다가 활자가 위장도 간장도 아닌 직장에 걸리는 바람에 또 옆길로 샜다. 그러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지 아마. 정해진 대로 쓰는 것은, 정해진 대로 사는 것만큼이나 재미없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