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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그림과 그림자] 물병은 물병이다
김혜리 2009-03-27

조르지오 모란디 <정물> Giorgio Morandi, <Natura morta>, 1957

클로드 모네를 수련 중독자라 부르고, 에드거 드가를 발레리나 오타쿠라고 놀리는 무례가 관대하게 용인된다면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 화가 조르지오 모란디(1890~1964)는 다음과 같이 불릴 법하다. “그릇을 늘어놓는 100만 가지 방법을 고안한 화가.” 좁다란 테이블 위에 세심히 배치된 호리호리한 물병, 납작한 깡통, 입이 넓은 찻잔 등 갖은 생김새의 용기(容器)들은 모란디가 평생을 함께한 피사체였다. 화면 속 공간은 하나의 모서리에서 맞닿는 두 평면이 전부다. 흔한 식탁보 한장 없이 헐벗은 바닥에 놓인 그릇들은 언제나 텅 비어 있다. 요소는 단출하지만 반복은 결코 없다. 물체 하나를 더하거나 빼거나 옮김으로써 이 소우주의 중심은 우지끈 요동한다. 모란디는 제반조건을 통제하고 하나씩 변수를 바꾸어가며 물리(物理)를 밝히는 과학자처럼, 천칭의 두 접시에 번갈아 미량의 가루를 더하는 약제사처럼, 야금야금 실험했다.

정물화를 “시간을 초월하는 법”이라고 묘사했던 화가의 인생 또한 말 그대로 ‘스틸 라이프’(still life)였다. 세간을 뒤흔든 연애 파문도, 창작의 광기에서 파생된 사고도 없었다. 1944년 레지스탕스 혐의로 경험한 잠깐의 투옥을 제외하면 잔잔했다. 태어나고 자란 볼로냐의 미술 아카데미 교수로 일생 봉직했고 세 누이동생과 한 지붕 밑에 살았으며, 작업 습관을 흔들어놓는 여행마저 꺼렸다. 심지어 “전시회를 너무 많이 보면 2, 3일간 마음에 여진이 남아 힘들다”는 고백을 남겼다.

그의 협소한 작업실을 방문했던 사람들의 공통된 기억은, 이젤을 뺀 모든 공간을 뒤덮은 그릇들과 그 위에 고르게 내려앉은 먼지 더께다. 본디 유리나 사기, 금속의 각기 다른 재질로 만들어진 모란디의 정물들은, 인간이 사용한 흔적으로 마모되고 다시 먼지로 ‘코팅’된 결과 거의 균일한 텍스처를 낸다. 이 지점에서 일상적 사물은 추상의 경계를 살그머니 타 넘는다. 한편 모란디는 그릇 하나하나를 인물을 대하듯 그렸다. 일부 평론가들이 그의 정물이 품은 엄숙함을 이탈리아 르네상스 종교화에 도열한 성자의 존재감에 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른 물체를 반사하지 않고 완결된 단자로 존재하는 모란디의 그릇은 고독한 묵상에 잠긴 채 서로를 건드리고 때로는 서로의 어깨 뒤에 숨는다. 그들은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흔히 보는 아담한 광장에 따로 또 같이 서성이는 사람들과 닮았다. 모란디의 동향인 움베르토 에코는 증언한다. “모란디의 그림은 척 보기엔 똑같은 붉은색이 집집마다 거리마다 미묘하게 다른 볼로냐시를 걸어본 다음에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정숙한 모란디의 정물화는 지극히 아름다운 역설의 덩어리다. 모던하면서 고전적이고, 직설적이나 풍요롭다. 보편적인 동시에 사적이고, 구상과 추상을 겸한다(이 점에서 모란디의 그림은 홍상수 영화의 틀림없는 예술적 혈족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 물론 물질은 존재하나 자체의 고유한 의미는 없다. 우리는 오직 컵은 컵이며 나무는 나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모란디의 말이다. 본다는 행위가 무엇인지, 회화가 무엇인지 해명하는 모란디의 정물화는, 언어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곳에서 미술로 쓴 미술 비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