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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야구는 해치지 않아요, 다만…
이다혜 2009-03-27

WBC TV 중계∥ <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지음, 황금가지 펴냄

나는 야구를 좋아한다. 그렇게 말하면 어김없이 받는 질문이 있다. “야구 언제부터 봤어(요)?”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도 아니고, 어느 선수를 좋아하느냐도 아니다. 내가 여자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백이면 백 “언제부터 봤어요?” 하고 묻는다. 그 답부터 하자면 장종훈이 빙그레에서 주전자 나르던 시절부터 봤다. 광주가 어딘지는 몰라도 광주일고 무서운 건 일찌감치 알았고, 짜파게티 먹는 일요일 낮이면 야구중계 보는 것 이상의 오락을 알지 못했다. 삼성 이재용 전무 이혼소식 듣고 가장 먼저 걱정한 게 (안 그래도 지난해 사건사고 많았던) 삼성 라이온즈에 타격갈까였고, 불경기라는 말에 떨었던 까닭 중 하나가 히어로즈의 한해살이였다. 그래서 뭐? 이런 걸 왜 ‘인증’해야 하나?

그런데 의미가 있는 모양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여자로 살다보면 가끔 황당한 일을 겪는다. 이를테면, 여자가 LG트윈스를 좋아하면 얼굴 반반한 남자 선수에 홀린 그루피 취급을 받는다(애들 잘난 게 내 잘못이냐?). 올림픽 때 어쩌고 얘기를 하면 올림픽 야구 붐에 편승한 부나방 취급을 받는다. 사실 팬덤 태반이 그렇다. 파고 들어갈수록 진골 성골 논란에 휩싸인다. 강민호가 공격형 포수라고? 이만수 전성기 봤어요? 못 봤으면 말을 마요.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봤어요? 못 봤으면 말을 말라니까. 그냥 김태균 별명 퍼레이드를 보다가 야구가 궁금해질 수도 있고, 중국집에서 베이징올림픽 결승을 보다 야구에 낚일 수도 있는 건데, 그래서 파울과 홈런 구분하는 법부터 알아갈 수도 있는 건데, 모르는 티 내면 비웃음만 산다. “나 야구 좀 본 여자야”를 증명할 수 있는 고유명사의 나열이 끝난 뒤에야 말을 편히 섞을 수 있다.

웃긴다. 부나방이면 어떻고 야빠면 어떤가. 선수들의 시즌 운용에 대한 걱정으로 WBC가 탐탁지 않았지만, 이왕 하는 거, 많은 사람이 보고 야구에 맛들려서 야구장이 꽉꽉 차고 구단이 늘고 광주, 대구, 대전 구장 신축하고 돔구장을 지으면 좋겠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야 야구에 돈 쓰려는 사람도 많아지지. 물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방심하고 발 들이면 그 끝에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야구는 결코 완성되지 않는 예술품 같아서 기쁨의 순간은 있어도 궁극의 만족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황당하게도, 그게 단순히 우승을 하고 하지 않고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선수와 감독이 일궈가는 작품, 야구는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과학은 자연의 법칙이며 불확실한 인간적인 요소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어떤 법칙에 어떤 요소를 대입하면 언제나 똑같은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예술은 어떤 결실을 맺기까지 직관과 의지가 덧붙여진다. 당사자의 의지나 능력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우수한 선수나 감독일지라도 내 눈에는 완성을 향해 정진하는 예술가로 보일 뿐이다. -<야구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페트

그래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열심히 야구 문외한을 야구장으로 낚는다. 하루키는 외야에서 공 날아가는 거 보다가 작가가 되었다잖아. 영감이 떠오를지도? 남자의 육덕미(美) 하면 역시 야구선수 허벅지 아니겠어? 박찬호 생각 안 나?(꿀꺽) 선배, 매캐한 담배 연기 말고 청명한 바람 맞으면서 맥주 마셔요. 소맥은 2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