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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액세서리] 화풀이 대신 다시 헤드폰을 쓰다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에서 톰(로맹 뒤리스)은 라이터를 뱅글뱅글 돌리는 습관이 있고 가죽 블루종을 입을 때도 타이 매는 걸 좋아하는 스물여덟살의 젊은 부동산 중개인이다. 허울이 부동산 업자일 뿐, 실제로 그가 하는 일은 집세가 밀린 세입자를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패거나 철거 예정인 건물에서 버티는 입주자를 쫓아내기 위해 계단에 쥐를 풀고 수도와 전기를 끊는 추접한 일이다.

시궁창 같은 일과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음악뿐이다. 식당에서 아버지를 만날 때나 차 안에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릴 때, 혹은 건널목을 건널 때 톰은 늘 헤드폰을 쓰고 있다. 동그란 소니 헤드폰으로 그가 듣는 음악은 주로 ‘텔레팝뮤직’이나 ‘킬스’의 곡이다. 멜로디와 비트에 집중하는 톰의 취향은 알고 보면 죽은 엄마 소니아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그는 피아니스트였던 엄마의 연주테이프를 오랫동안 보관해왔다.

가끔씩 스스로를 위해서만 피아노를 치던 톰은 어느 날 시립 음악단의 피아노 연주자 오디션을 보기로 결심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중국인 소녀에게 피아노를 다시 배우는 동안 톰은 뜻대로 안되는 연주 때문에 분노하고 엉뚱한 화풀이를 하고 소리를 질러댄다. 낮에는 주먹질을 하고 창문을 부수다가 밤에는 손등이 찢어진 손으로 바흐의 ‘토카타 E 마이너’를 연주하는 기우뚱한 생활. 톰은 커다란 헤드폰을 뒤집어쓴 채 음악을 듣고 술집 탁자와 자동차 대시보드, 리나스 샌드위치 접시를 건반 삼아 피아노 연주를 연습한다. 헤드폰을 쓰는 순간 톰은 프라이팬에 맞아 쓰러진 아랍 남자도, 부인을 따돌리고 매일 밤 바람을 피우는 친구도, 깨진 창문과 자루에서 풀려나온 쥐와 쫓겨난 자들의 악을 쓰는 목소리도 다 잊는다. 그저 호로비츠의 다큐멘터리에서 본 경주마가 트랙을 달리는 것 같은 손가락의 리듬감만 기억한다.

마침내 오디션 날. 톰은 한번도 입지 않은 크리스찬 디올의 흰 셔츠를 꺼내 입고 중국 차를 한 모금 마신 뒤에 슈트 차림으로 오디션을 보러 간다. 손수건으로 건반을 닦고 심호흡을 한 뒤 연주를 시작한다. 그러고는 완전히 망친다. 다시 거리로 나온 톰은 엉망이 된 스스로의 연주에 화를 내거나 울지 않는다. 거리의 깡통을 걷어차거나 쓰레기통을 뒤엎지도 않는다. 다만 사거리에 선 채로 다시 헤드폰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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