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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우아하고 감상적인 호객꾼들
이다혜 2009-04-10

<시인> 마이클 코넬리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上>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북스피어 펴냄

이성을 볼 때 어디부터 보는가? 남자라면 여자의 눈(이라고 쓰고 가슴이라고 읽는다)-가슴-다리(라고 쓰고 가슴이라고 읽는 사람도 있다)가 가장 일반적인 루트인 것 같다. 여자들은 남자의 얼굴, 엉덩이, 손… 과 같은 산발적인 부위에 목소리나 체취를 더해 공감각적(!)으로 느끼는 일이 많다. 그럼 책을 고를 땐 어떨까? 책의 어디가 당신을 유혹하는가? 책 표지 디자인에 유달리 약한 사람도 있고 느낌표 콱콱 박힌 표지 문구에 홀딱 넘어가 버릇하는 사람도 있다. 뜻밖에도 저자의 이름이나 얼굴에 심하게 유혹당하는 사람도 있다(소설가도 잘생기고 예쁘고 볼 일이다). 그래서 팔랑귀 독자들을 향한 호객행위는 대개 표지 인근에 집중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독자를 넋놓게 하는 호객 행위가 처음 드러나는 책의 속살, 그러니까 서문에서 이루어지는 일도 있다. 그 유명한, 알베르 카뮈가 장 그르니에의 <섬>에 쓴 서문이 대표적이다. “나는 다시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고 싶다. 거리에서 이 작은 책을 펼치고 나서 겨우 처음 몇줄을 읽어 보고 다시 덮고는 가슴에 꼭 끌어안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정신없이 읽기 위해 내 방에까지 달려왔던 그날 저녁으로. 그리고 나는 아무런 마음의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책을 열어보게 되는 저 알지 못하는 젊은 사람을 너무나도 열렬히 부러워한다.” <섬>은 카뮈의 그 서문까지 포함해 불멸의 예술작품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서문이 설레발로 느껴져서는 안된다. 서문에서 추워올린 기대치를 뒤에 이어지는 글이 만족시키지 않으면 그 서문은 제아무리 명문이라 해도 의미가 없다.

스티븐 킹이 마이클 코넬리의 <시인>에 쓴 서문은 그런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그 서문을 읽고 나면 당장 소설을 읽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데, 실제로 <시인>이 빼어난데다 재밌기까지 한 스릴러/서스펜스 소설이기 때문이다. 킹은 <시인> 서문에 이렇게 썼다.

“이 소설에 관해서 여러분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작가가 이 작품에서 놀라운 이야기 솜씨를 꾸준히 발휘하고 있으며, 서스펜스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절대적인 즐거움을 느낄 것이라는 점이다. (중략) 여러분이 두 번째로 알아야 할 것은, 이 작품이 정말로 무섭다는 점이다. 무서운 책을 읽을 때는 불을 전부 켜놓아야 한다는 케케묵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인>을 처음으로 읽을 때 나는 정말로 나도 모르게 불이란 불은 모조리 켜게 되었다.” -<시인>(마이클 코넬리)에 쓴 스티븐 킹의 서문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 上>에 실린 미야베 미유키의 서문은 사려깊고 책임감있는 책임편집자로서의 미야베 미유키를 보여준다. “마쓰모토 세이초씨의 전집과 여러 권의(더구나 저명한) 단편집을 늘어놓고 더없이 호사스런 도시락을 꾸미는 기분으로 편집에 임했습니다.” 믿고 읽는 킹 선생과 미야베 여사의 서문. 몇번이고 기꺼이 유혹당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