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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춘사월, 지금 필요한 건 뭐다?
이다혜 2009-04-24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노블마인 펴냄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작가정신 펴냄

어른들이 고등학생에게 하는 세 가지 (선의의) 거짓말이 있다. 대학 가면 살 빠진다. 대학 가면 애인 생긴다. 대학 가면 좋은 직장 구한다. 다이어트고, 연애고, 취직이고, 다 개인의 문제다. 믿고 기다린 결과 고3 부기가 다 빠지지 않은 채 나이 서른을 돌파. 애인 없음. 고3 때 담임, 나랑 싸울래염? 춘사월, 꽃처럼 피어나는 버짐을 반갑게 맞으며, 어른들에 대한 믿음 하나로는 연애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책 두권을 소개한다. 첫 번째 주인공은 두 여대생 사다코와 쇼코다.

“두 사람 모두 당연히 남자친구를 원했다. 하지만 안달한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남자친구는 얼마든지 사귈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열여덟살이 되면 보통면허를 딸 수 있듯 자신에게도 저절로 남자친구가 생기리라고 지극히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다가온 현실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간단하게 말하자. 그러니까 애인 따위는 생기지 않았다는 말이다.”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 중 ‘가모가와 (소)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좋아하는 남자가 생기지 않아서, 아니면 마음에 드는 남자가 다가오지 않아서, 사다코와 쇼코는 의기투합한다. 솔메이트라도 되는 양 손발 척척 맞춰가며 어울리던 어느 날 사다코가 변심(?)한다. 그렇게나 싫어하던 강변의 바퀴벌레 커플이 되고 싶어진 것이다. 쇼코는 배신감에 치를 떨다 사다코에게 결투를 요청한다. 결투 끝에 쇼코는 대오각성, 자신도 연애라는 것에 몸을 던져보기로 한다. 두 번째 주인공은 환상적인 순정 연애 모험담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모리미 도미히코)의, 후배를 짝사랑하게 된 남자 대학생 ‘나’다. 끓어오르는 연심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나’는 무작정 아가씨를 몰래 따라다니며 기회를 잡으려고 애쓴다. 1학년 아가씨도 자꾸 마주치는 게 신기한지 한마디 한다. “또 만나네요.” 아가씨 생각에는 참 신기한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 무려 반년 동안 우연 아닌 필연으로 마주친 두 사람은 희한한 사건들을 경험하게 되고 그만큼의 추억을 만든다.

간신히 용기를 내 아가씨와 커피 약속을 한 뒤, 주인공은 오후 4시 약속을 위해 오전 7시에 일어나 옷을 빨아 말리고 그녀와의 대화를 예행연습한다. 아가씨는 그런 그에게 다가가며 작게 중얼거린다. “이렇게 만난 것도 어떤 인연.” 그렇다. 눈치없는 상대를 만나면 꾸준한 짝사랑이 인연으로 둔갑하기도 순식간이다. 6개월을 순식간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가씨가 한국영화 <사랑을 놓치다>를 봤으면 일찍 깨달았을 텐데. 그 영화에서 설경구는 송윤아에게 이렇게 말한다. “잘해주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겁니다.”

첫 연애(뭐든 처음이 어렵다)를 향해 한발 내딛기를 주저하는 청춘을 위해 연애 이야기만 쏙 골라 소개했지만, 사실 이 두 책은 일본의 고도 교토로 독자를 유혹하는 마물이다. 두 책 다 교토의 길거리, 골목, 강변을 무대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이 교토에서는 하늘에서 잉어가 떨어지는가 하면(세상의 종말 같은 건 아니다), 밤길에는 남의 팬티를 벗기는 술버릇으로 유명한 술꾼이 돌아다니고, 호루모라는 귀신을 부려 전투하는 학교 대항전이 열리기도 한다. 책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교토의 거리를 걸으면 정말 이런 신기하고 재미있고 분홍분홍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환상이 못 견디게 유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