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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최초`, 그의 손을 믿는다
2001-11-28

안형국 촬영장비제작업체 ‘밀리디’ 대표

질척한 가을비 덕에 흙탕물을 뒤집어쓴 4인승 밴은 덜컹거리며 골목을 회전하고 있었다. 낮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 부산시 남구 용당동. 창조적인 물품이 나오는 비옥한 토양같아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맨손을 무기로 불모지를 텃밭으로 가꾼 사람이 있다. “촬영에 관련된 장비들을 디자인하고, 생산하고, 개조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촬영장비제작업체 ‘밀리디’ 대표 안형국씨. 사람좋은 웃음을 ‘허허’ 지어보이다가도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뚝딱 뚝딱’ 만들어냈던 <한지붕 세가족>의 ‘순돌이 아빠’처럼 묵직하고 두툼한 그의 손을 통하면 세상에 안 만들어질 것이 없어보인다.

뭐든 양보하게 생긴 얼굴이지만 이 사람, 일단 일 이야기가 나오면 세상 누구보다도 날카로워진다. “국내에서 헬기를 이용한 항공촬영업체가 7, 8군데되는데 그중 35mm카메라를 모형헬기에 달고 항공촬영에 성공한 경우는 우리가 최초라고 자부합니다. 업체들이 광고는 하고 있지만 촬영된 필름을 보자고 하면 증명할 수 있는 업체는 없단 말이죠.” 다소 흥분된 어조로 말하는 그에게서 장인들만이 지닌 자존심이 느껴질 정도다. 2년 전 영화용 항공촬영에 욕심을 가지고 시작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문가도 참고할 서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헬기 전문가들을 수소문하다 윤희신씨를 만났죠. 그 사람은 헬기에 완전히 미친 사람이거든요.” 순수헬기 제작비용만 보자면 500만원이면 되는데 시행착오를 거치는 2년 동안 전체 비용은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들어갔다. “추락 한번 할 때마다 포기하려고도 많이 했었어요. 3개월간 포기한 적도 있었죠. 그런데 또 손대게 된 게 지금까지 온거고….” 누가 내놓고 팔기에 샀는데 필름걸이도 없어 직접 만들어 달았다는 짝없는 ‘짝퉁’ 영사기가 회전하면서 낡은 작업실의 벽면을 향해 뿜어낸 장관. 15kg이 넘는 영화용 35mm카메라를 모형헬기에 달아 촬영한 아득한 영상이 시원하게 벽을 가르며 날아간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많아 장난감이란 장남감은 다 분해했다는 안형국씨는 고등학교 때 사진서클 활동을 할 때도 카메라구조에 기계적인 관심이 쏠렸다. 사진전공으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고 전공을 디자인으로 바꿔 대학에 들어갔다. 졸업 뒤엔 작은 홍보물 만드는 프로덕션에서 카메라맨을 하면서도 관심은 자연스럽게 장비쪽으로 기울었다. “카메라맨을 하다보니 어떤 장비들이 현장에서 유용하게 쓰일 건지, 지금까지 나와 있는 장비보다 나와야 할 장비들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개인적으로 하나둘씩 만들다 보니까 직접 생산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자신도 생겼구요.” 그렇게 1998년, 창업 자본금이 100만원이라 ‘밀리언디자인’이라고 이름붙인 산업용품 디자인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던 98년 말, 프로덕션을 하는 친구가 카탈로그에 실린 외제 미니크레인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똑같이 만들 수 있겠느냐’는 의뢰를 했다. “처음 만들었던 그 제품이 문제도 많았지만 외제를 카탈로그만 가지고 분석해서 70% 정도 흡사하게 만들었다는 게 참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99년 5월 KOBA에 참여하면서 ‘밀리언디자인’은 촬영장비업체 ‘밀리디’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고 요즘엔 항공촬영뿐 아니라 일반유저용 DV카메라 스테디캠 제작에도 힘을 쏟고 있다.

“여기 일본입니다.” 부가취재가 있던 날, 그는 도쿄에서 열린 방송장비 전시회에 출장가 있었다. “국제 전시회에 한번 나올 때마다 몇백만원씩 들지만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계속 봐야 뭐가 필요한지 뭘 할 수 있을지를 알지요. 현실적으로 힘들지만 미래를 보고 하는 거니까 버티고 있는 거죠. 힘들어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 아닙니까?” 그의 마지막 목표는 ‘밀리디’를 국제적인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손을 보면 그것이 불가능이 아님을 안다.

글 백은하 lucie@hani.co.kr·사진 이혜정 hyejung@hani.co.kr

프로필

1969년생

동의산업대 산업디자인과 졸업

98년 산업디자인업체 밀리언디자인 창업

99년 상호를 ‘밀리디’로 바꾸고 촬영장비제작 및 렌털

영화 <신라의 달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예스터데이> <벌써 일년> 외 다수·뮤직비디오, TV드라마의 영상장비제작 및 렌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