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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영상원은 왜 사라졌는가
주성철 강병진 사진 최성열 2009-05-26

한예종 감사때 지적 많았지만 결과에선 쏙 빠져… ‘영화아카데미와 통합해 부산이전’ 소문 힘 받아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총장이 사퇴했다. 5월19일, 교내에서 기자회견을 연 황 총장은 “예산, 인사, 학사운영의 권한이 동결된 식물총장의 상태에서 나의 도덕적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또 학교와 학생을 볼모로 삼고 싶지 않아서 사퇴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황 총장이 스스로를 ‘식물’에 비유한 배경에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의 감사 결과가 있다. 문화계에서는 지난해부터 진보 성향의 기관장을 솎아냈던 현 정권의 움직임이 최종적인 단계에 온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리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황 총장의 사퇴, 한예종에 대한 문화부의 감사 배경에는 정권의 코드인사 외에 사립예술대학의 위기의식이 있다.

문화부는 지난 5월18일, 12가지 감사 지적 사항과 징계 요구 등의 후속 조처 내용을 한예종에 통보했다. 이 가운데 황지우 총장과 관련한 사항과 기타 행정사항을 제외한 내용은 U-AT통섭교육(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과 과학기술의 통섭을 위한 교육) 중단, 이론과 축소, 서사창작과 폐지, 음악원 실기 연수과정 조속 폐지 등이다. U-AT통섭교육과정은 황지우 총장과 영상원 심광현 교수의 주도로 미래교육준비단을 구성해 2008년 3월부터 추진해온 것이다. 다양한 예술 장르와 인문학, 뉴미디어 과학기술 등이 서로 소통하는 학제간 융합 교육을 통해 전인적 예술인을 양성하자는 취지를 목표로 삼았으나 지난해 유인촌 문화부 장관은 이 과정이 예술 실기 전문가 양성이란 학교의 취지와 어긋난다며 중단 지시를 내렸다. 또 올해 문화부가 예산을 전액 삭감해 학교쪽은 기성회비에서 관련 비용을 끌어쓰며 관련 과정을 진행해왔다.

문화부가 U-AT통섭교육을 중단시키면서 내놓은 이유는 크게 4가지다. 성과없이 예산만 낭비했고 연구원 공채규정을 위반했으며 기자재를 과다 구입했다는 것, 그리고 장관의 중단 지시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이론과를 축소시키자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선발학생 10% 이하만이 예술고 출신이고 폐강 기준(5명 이하)도 실기 관련 학과와 동일하므로 애초 한예종의 취지에 맞지 않게 이론가 양성이 목표라는 것, 또한 전 학생에게 적용되는 이론 수업은 실기 전념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서사창작과는 기존 사립대의 문예창작과와 차별성이 없다는 이유로 폐지가 결정됐다.

문화계 뉴라이트가 주장하던 그것

의혹은 이번 감사 결과가 어디서 봤던 것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황지우 총장은 이미 “감사 항목들이 문화미래포럼이나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회 등 문화계의 뉴라이트에서 제기한 문제점과 동일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9월 ‘예술교육,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새 정부의 문화예술정책 과제에 대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심포지엄은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과 문화미래포럼이 주최했다. 이 자리에서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 운영위원인 정재형 동국대학교 교수는 ‘국가의 전문예술인 양성 고등교육정책에 대한 비판’이란 발제를 통해 한예종의 구조조정안을 내놓았다. “1단계, 각 원에 있는 이론과 및 협동과정을 폐지한다. 2단계 기존 예술대학과 중복되는 전공은 폐지해 단일하고 축소된 형태의 영재조기교육학교로 남긴다.” 이 밖에 영상원과 영화아카데미 통합, 미술원 폐지 내지 변경, 연극원은 연기원만 유지, 전통예수원은 연희만을 남겨두고 음악원, 무용원과 통합 등이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기존 예술대학과 중복되는 전공은 폐지”한다는 내용이다. 정재형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기존 예술대학은 이미 현실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 한예종은 기존 예술대학과 차별성이 없기 때문에 존립기반이 없어졌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술대학을 무력화해야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말하자면 국립학교인 한예종의 존재가 기존사립예술대학의 존립위기를 초래했다는 이야기다. 기존 예술대학과 중복되는 과정은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나, 그 일환으로 이론과를 폐지시키는 것은 한예종과의 경쟁관계를 소멸시키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한예종의 한 관계자는 “정부의 진보성향 기관장 솎아내기에 보수세력과 위기의식을 느낀 전국예술대학교수연합이 동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영화계는 한예종 내 영상원의 향방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감사 결과와 관련해서는 또 다른 의혹이 있다. 전규찬 방송영상과 교수는 “감사 결과에 따르면 영상원과 관련한 사항은 빠져 있다”고 말한다. 감사를 안 한 게 아니다. 심광현 영상이론과 교수에 따르면, “영상원과 관련한 감사확인서는 무척 많았고 지적된 당사자들이 해명의견서도 썼다”. “영상원 내 학과 전반에 걸쳐 있었다. 특히 방송영상과에 집중해서 기자재 관리규정과 관련한 내용을 상당하게 감사했다. 우리는 당연히 영상원에도 후속조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황당했다.”

감사에서 지적된 게 없으니 별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그런 게 아니다. 정재형 교수는 앞서 설명한 발제문에서 영상원의 개선방안에 대해 상세히 썼다. “영상원과 아카데미를 통합하여 국가영상교육기구를 최소화한다. 사립대학 영상교육과와 상호관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한다. 영화제작 현장과의 연계 및 재교육기관으로 성격을 전환한다.” 여기에 “아시아 영화교육만을 전담하는 아시아영화학교로 운영하자”는 의견도 덧붙였다. 감사 결과에서 빠지자, 영상원과 관련된 소문들은 더욱 힘을 받고 있다. 영상원과 영화아카데미를 통합시켜 아시아영화대학으로 만들어 부산으로 내려보낸다는 소문, 영진위쪽에서 이미 통합과 관련한 용역보고서를 주문했다는 소문 등이다. 심광현 교수는 “이미 영상원을 해체시키거나, 부산으로 이전시킬 것을 염두하고 감사 결과에서 뺐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문이 소문일 뿐이어도 문화부의 감사 후속조처가 이행된다면 영상원의 구조조정도 불가피하다. 문화부의 감사 결과 통보내용에는 ‘이론과 축소 등’으로 쓰여 있지만 5월19일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한예종 감사에 참여한 최종학 문화부 감사관은 “이론학과를 폐지하고 실기교육을 강화하는 등 한예종의 구조 전반에 대한 리모델링은 해당 국·실에서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예종 내 원마다 있는 이론과는 총 6개다. 자동적으로 모든 원을 구조조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 때와 같은 위급 상황

한예종 교수협의회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비상연석회의를 제안했다. 연석회의는 22일 금요일 발족식을 갖고 향후대책을 추진할 예정이다. 오는 25일에는 교수협의회가 기자회견을 갖고, 26일에는 몇몇 진보단체와 함께 심포지엄을 연다. 오는 27일, 문화미래포럼이 ‘한예종의 문제 및 개혁방안’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기 때문이다. 한 영상원 관계자는 “스크린쿼터가 반 토막났을 때처럼 공청회에 이어 바로 정부발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사안이 시급해졌다”고 말했다. 황지우 총장의 사퇴 이후에도 한예종의 향방과 관련한 논란은 더욱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