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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영화] 판타스틱했던 옛 극장을 닮았어
김중혁(작가) 2009-05-28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등 어딘지 모르게 부실하고 널널한 가스 제닝스 영화의 매력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의 누구나 예상 가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개그콘서트-소비자 고발>의 황현희 PD가 자신의 예고를 지키지 않듯 소설가 고발의 본 PD 역시 소설가 김연수를 집중 조명하겠다는 지난편의 예고를 지키지 않을 예정이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 보는 게 겁난다. 파렴치한 남자일 뿐 아니라 강간범이기까지 하다는데,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친한 친구가 그런 나락으로 빠진 걸 어찌 눈뜨고 볼 수 있을까. 혼자서는 도저히 보지 못할 것 같으니 동네방네 수소문하여 소설가 단체관람이라도 추진해볼까 싶다. 관심있는 소설가들은 연락주기 바란다.

지난주 김연수 배우가 따님과 함께 보았다는 <초코초코 대작전>의 뜬구름 잡는 듯하나 지나치게 리얼리즘(이라는 게 현실의 리얼한 사실에 입각한, 그거 맞지요?)을 표방하는 스토리를 읽고 나니 나 역시 아주 오래전 아버지와 함께 보았던 영화가 생각난다. 1937년생이신 아버지는 온몸에 두꺼운 뼈를 장착하고 계시며(현재 몸무게 97kg), 노인정에서는 온갖 잡무를 도맡아 할 정도로 활동적이시고 (노인정의 영계랄까) 드라마는 꼬박꼬박 챙겨보지만 (아침 드라마 필수!) 스포츠는 절대 보지 않는 감성 풍부한 분이다.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서 영화 보는 법을 배웠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중 첫 번째가 같은 영화를 두번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따지자면 아버지는 영화를 ‘무척’ 사랑하는 분이었다. 같은 영화를 세번씩 보기도 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보는 영화 장르는 단 하나였다. 무조건 액션이었다. 아버지는 극장에 가서 같은 액션영화를 두번, 세번 보았다.

아버지 짐자전거에 묶여가던 풍경

극장에 가던 날을 생각하면 딱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아버지는 (뒷좌석에 높은 손잡이 같은 게 세워져있어 짐을 묶기 편하도록 만들어진) 짐자전거에 형과 나를 꽁꽁 묶고 극장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불면 날아갈까 자전거에 태우면 떨어질까 노심초사 걱정하는 아버지의 잔정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짐자전거에 묶여서 거리로 나설 때는 창피해서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형과 나는 적들에 생포된 포로의 모습으로 극장에 끌려갔다. 극장에 들어서면 아버지는 우리 둘을 앉혀놓고 영화 관람에 집중하셨다. 보고 또 보고 또 보았다. 아버지가 이소룡의 무술에 심취해 있을 때 형과 나는 잠에 취했다. 처음이야 열심히 보았지만 같은 영화를 두세번 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극장에 앉아서. 아버지는 신비로운 무술을 보고 연방 껄껄 웃었고 (지금도 텔레비전을 보다 훌륭한 액션만 나오면 그러신다) 우리가 자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영화를 충분히 사랑한 아버지는 다시 우리를 짐자전거에 묶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 보았던 영화는 단 한편도 기억나지 않지만 형과 내가 잠에 심취했던 극장의 분위기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고등학생이 되고 영화를 열심히 보았다. 주로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치고(그래요, 저,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시장 한복판에 있는 아카데미 극장에서 동시상영을 보았는데 극장 분위기가 참으로 남달랐다. 소도시 김천에서 좀 논다 하는 학생들이 극장에 모여들었는데, 이 학교 저 학교가 뒤섞이다보니 영화 ‘친구’의 극장 패싸움 장면까지는 아니더라도 소규모 충돌이 자주 일어났다. 극장의 최고 명당은 스크린 바로 앞 그러니까 제1열이었는데, 이곳은 동네에서 최고로 잘 노는 형들이 스툴처럼 생긴 의자에 다리를 턱 하니 올리고 담배를 피우며 영화 관람을 하는 자리였다. 극장에서 담배를 피우다니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인데 그때는 그랬다. 화면에서는 비가 내렸고, 맨 앞자리에서는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정답은 늘 하늘에서 뚝 떨어지고…

가스 제닝스의 영화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을 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극장의 풍경이었다. 영화의 첫 장면에 극장이 등장한다. 동네에서 좀 노는 아이인 리 카터는 오래전 우리 동네 아카데미 극장의 형님들처럼 담배를 피우며 영화를 관람하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부러워 보일 수가 없었다. (담배도 끊었는데) 한대 피우고 싶었다. 영화의 맨 마지막 부분에도 극장이 등장한다. 주인공 윌이 리 카터를 위해 촬영한 단편영화를 상영하는데 온 동네 사람들이 모인 극장의 풍경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이소룡의 영화를 보던 풍경과 비슷했다. 언제부터 극장이라는 풍경이 사라진 걸까. 이런 극장이 동네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극장의 시작은 무조건 동네의 영화여야 한다는 규칙을 세운 다음, 영화 <비카인드 리와인드>에서처럼 동네 사람들이 함께 만든 영화를 상영하는 것도 좋겠고, 학교에서 내준 영화 만들기 숙제를 동네 사람들 앞에서 상영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라면 어떤 영화를 보여주고 싶을까. 유명 소설가가 한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동안 쫓고 쫓기고 속고 속이며 편집자와 싸워나가다 결국 마감이 한참 지나서야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휴먼드라마가 좋을까, 아니면 유명 소설가가 우연히 한 영화에 파렴치한으로 등장했다가 점점 개성이 강한 조연을 맡게 되고 악역 전문 배우가 된 뒤 자신의 실제 성격마저 그렇게 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야 마는 본격 스릴러물이 좋을까. 써놓고 보니 둘 다 코미디물이 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생각을 말자. 영화 시작하기 전에 젊은이들이 만든 단편영화 한편 트는 것도 불가능한데, 꿈같은 이야기다.

가스 제닝스 감독의 전작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뒤늦게 보고 호들갑 떨며 칭송하던 영화였다. 원작도 원작이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뻔뻔하다. “아, 그런 리얼리티의 문제는 말이죠, 저의 영화에서는 취급하지 않습니다”라는 듯한 태도가 영화 전체에 깔려 있다.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도 마찬가지다. 가스 제닝스가 좋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장난치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고 굳이 영화 전체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어딘지 모르게 비어 있고 “그래서 이게 다야?” 싶기도 하고, 사건은 늘 뜻밖의 길로 전진하고 정답은 늘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 가스 제닝스의 영화는 아귀가 딱 맞물리면서 지독한 감동을 준다든지 엄청난 반전 때문에 손에 땀을 쥔다든지 하는 장면은 거의 없고 모든 게 부실하고 널널하다. 가스 제닝스의 영화는 어쩐지 오래전의 극장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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