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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상대주의적 SF시리즈 <스타게이트>
2001-11-29

지구인? 그 야만인들?

OCN 액션 수·목 밤 9시30분(현재 시즌1이 평일 오후 2시50분부터 재방송중) 미국 드라마를 보다보면 영화가 드라마화되었거나 드라마를 영화화했거나 하는 경우를 자주 만나게 된다. <나인 투 파이브> <스타트렉> <X파일> <아담스 패밀리> <로빈슨 가족/ 로스트 인 스페이스> 등등. 이 대열에 <스타게이트>가 합류했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단세포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의 작품으로, 스타게이트라는 인위적 웜홀을 통해서 다른 행성으로 간다는 이야기다. TV시리즈로서 영화에 크게 밀리는 것이 있다면 제작비의 규모이다. “영화화가 되면 화면도 커지고 옷도 커지고 구두도 커지죠”라는 데이비드 듀코브니의 명언을 뒤집어서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영화 <스타게이트>가 블록버스터SF라는 점을 감안할 때 TV시리즈로서 <스타게이트>는 누가 뭐래도 값싼 티가 난다는 것이 좀 문제다. 배우가 바뀐 것도 문제라면 문제. 커트 러셀은 리처드 딘 앤더슨(이건 만세!)으로, 제임스 스페이더는 마이클 생크스라는 처음 듣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배우말고도 TV시리즈로 이전하면서, 포석도 조금 바뀌었다. 우선은 스타게이트 자체가 행성마다 존재하고, 좌표를 알면 여러 행성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제 적은 가우울드라는 유충이다(또 숙주냐!). 우주를 정복하려는 가우울드, 즉 아포피스가 등장하고, 스타게이트를 접수한 미군은 아예 정찰팀을 구성하여 아포피스를 찾아내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행성을 탐색하는 목적 아래 다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전 멤버 잭 오닐과 대니얼 잭슨에 사만다 카터와 아포피스에게 등을 돌린 외계인 틸크가 합류한다. <스타트렉>이 우주선을 타고 이곳저곳을 다닌다면, TV시리즈 <스타게이트>는 웜홀을 통해서 이곳저곳을 다니는 것이다.

영화 <스타게이트>가 상당히 단세포적으로 보이는 것은 누가 뭐래도, 롤랜드 에머리히의 못 말리는 특징- 이 세상엔 나쁜 놈 아니면 좋은 놈밖에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TV시리즈 <스타게이트>는 어쩔 수 없이 이 점을 물려받아 ‘아포피스=나쁜 놈=격퇴 대상’을 기치로 내세우고 모든 외계 행성인들이 영어를 한다는 무식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전혀 뜻밖의 지점에서 이 무식함을 상쇄한다. 수많은 행성을 다니면서, 이들은 자기들 편을 찾는다. 그러면서 수많은 ‘문화’와 ‘문명’을 접하게 된다. 군사기지의 교두보를 만들고 상대를 교화하려는 이들의 목적은 TV시리즈다운 엉성함 덕분에 불쾌감을 유발하는데- 시즌1의 3편까지는 확실하게 그렇다- 점점 방문하는 행성이 늘면서 ‘교화’와 ‘회유’가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지면 오히려 역전이 된다. 특히나 요정처럼 생긴 주제에 최첨단 무기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녹스 종족과 기껏 목숨을 구해줬더니 “야만인들이 구해줬다”며 투덜거리는 톨란행성 사람들은, 우주까지 나아갔으니 우리는 많이 발전했다는 자존심을 여지없이 구겨버린다.

지구만이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아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외계인들은 지구인보다 우월한가, 열등한가? TV시리즈 <스타게이트>는 이 세상엔 수많은 외계인이 있다고 답한다. 우리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우리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이것은 유연한 사고방식의 출발선이다. 우리 자신의 시야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한다. 우주로까지 발을 넓힌 인간은 과연 영역을 넓혔다고 시야를 넓힌 것일까?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우리의 가슴은 머리의 발전속도를 못 쫓아가곤 한다. 인간에게는 수천년의 시간이 어느 종족에는 그냥 단지 기다리기에 좀 긴 시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인간에겐 잊혀진 역사책의 한줄 사연이 어느 한 존재에게는 인내와 기다림과 슬픔을 의미하기도 한다. ‘라자루스의 비밀’에서 한 외계인은 아픔이라는 개념을 파고들어가다가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된다. 죽음이란 다신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흐느끼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통해 오히려 인간들은 새로운 인생을 얻게 된다. 죽음의 의미를 통해 삶을 얻는 것이다. 오닐과 카터가 우주 미아가 되어버린 에피소드 ‘에니그마’는 아문센 일행의 불행한 최후를 연상시키며 인간의 시야가 반드시 정복한 영역과는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정말로 원주민의 씨를 말려버린 미국에서 만든 드라마일까? TV <스타게이트>는 물량으로 승부를 걸기보다는 감수성에 호소한다. 인간이 우주로 나아가면서 포부만을 넓게 가지지 말고 마음도 함께 열어달라고 요청한다. ‘왔노라, 보았노라’는 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세상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고 반드시 우리의 기준이 절대 기준이 아니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