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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그것은 인생
김도훈 2009-06-19

칸영화제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의 부촌으로 몰려든다. 꼭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기자와 영화관계자들이 목에 거는 상영관 입장 카드가 없다. 그래도 그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영화광들이야 몇달만 더 기다리면 된다. 대부분의 경쟁부문 상영작은 영화제가 끝나는 순간부터 프랑스 전역의 극장에 걸린다. 영화광이 아닌 현지 사람들은 어차피 영화 따위 그리 중요한 건 아니라는 눈치다. 축제는 축제고, 영화는 영화고, 인생은 인생이니까. C’est La Vie!

<리베라시옹> 5월14일자에는 클레르라는 여자의 이야기가 실렸다. 클레르는 45살의 실업수당 수혜자다. 그녀는 영화제 메인 건물인 팔레의 기념품 매장 주변 화단에서 잠을 잔다. 식사는 교회에서 나눠주는 무료 급식으로 해결한다. 몸은 공중 화장실과 시립 목욕탕에서 씻는다. 그녀는 열렬한 영화광이지만 칸에서 영화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매일 배포되는 데일리 매거진에 실린 영화의 스틸만으로 만족한다. 그녀 역시 나름 수상작에 대한 예상을 하기도 한다. 올해는 왠지 로우예의 영화가 상을 받을 것 같단다(결국 로우예의 영화는 각본상을 받았다). 한번은 영화를 보러 들어가기 위해 영국 록스타 피트 도허티의 친구인 척도 해봤다. 물론 극장 진입에는 실패했다. 그래도 그녀는 칸영화제를 좋아한다. “깨끗하고요. 사람들도 친절해요. 안전요원들도 극장에 들여보내주지는 않지만 항상 미소로 대해주지요.” 클레르는 젊은 시절 영화를 공부한 적도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화학교 FEMIS 입학시험에 도전한 적도 있다. 하지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나서 요양원에서 어느 화가를 만나서 아이를 둘 낳았다. 그녀는 모두 5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엄마로서의 책임을 어느 정도 회피했다고 고백한다. 큰아이는 스물세살에 독립을 했다. 나머지 네 아이는 지난해 여름 헤어진 화가와 산다. 그녀는 하루하루 겨우 먹고사는 신세지만 여전히 꿈을 갖고 있다. 칸영화제에서 일하고, 포스터 디자인을 하는 게 그것이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선셋대로>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기 시작하면 칸의 중심 대로인 크로와젯은 선셋대로가 된다. 기자와 바이어와 감독과 영화광과 신문팔이와 스타를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이 영화라는 꿈에서 깨어나 밥을 먹기 위해 집으로 간다. 모두 석양을 등지고 어디론가 걷는다. 그중에는 클레르도 있다. 그녀는 데일리 매거진을 허리춤에 끼고 느긋하게 무료급식소로 향한다. 축제는 축제고, 영화는 영화고, 인생은 인생이다. C’est La V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