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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현실, 영웅과 민중의 거리
2001-11-29

그 많던 영웅들은 어디에...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을 보면서 다시금 실감이 났다. 뉴욕에 간 쿠바의 할아버지들이 쌍둥이 빌딩을 가리키며 감회에 젖은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이제 저건 없어요. 할아버지.” 리키 마틴의 뉴욕공연 녹화 방송에서 다시 느꼈다. ‘웰컴 투 뉴욕 시티’라며 장막이 걷히는 순간 드러나는 쌍둥이 빌딩. “열정의 청년이여, 이제 그건 없다네.” 상상할 수 없던 거대한 사건이 벌어졌고, 더욱 상상할 수 없는 전쟁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도대체 누가 그 일을 벌였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 하지만 나에게는 자꾸만 떠오르는 또다른 의문이 있다. 그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수많은 위기로부터 미국을 구해냈던 그 초능력 영웅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스파이더맨, 너야말로 영원한 뉴요커가 아니었나?

최근 <뉴욕 데일리 뉴스>는 ‘만화가 심각해지다. 슈퍼 히어로들까지 세상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과 <스파이더 맨>을 펴내고 있는 마블 코믹스의 조 퀘사다 편집장은 “이런 일들이 정말로 일어나는 세상에서 색동옷을 입은 신비로운 존재들이 무슨 소용이 있나?”고 한탄한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질 때 만화 속의 슈퍼 영웅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이름도 모를 소방관과 경찰관만이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블 코믹스는 즉각 ‘히어로’(Hero)라는 자조적인 제목의 포스터를 만들어 그 수익금을 순직한 소방관과 경찰관들에게 기부하기로 했다. 나아가 인디펜던트 코믹스는 이 현실 속의 영웅들을 기리기 위해 라는 만화를 내년 1월에 펴낼 예정이다. <더 스피리트>의 윌 에이즈너가 여기에 함께한다.

하지만 슈퍼 영웅들이 무릎꿇고 반성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DC 코믹스는 애국적인 <슈퍼맨> 포스터를 배포하며, 그가 정작 위기의 순간에는 아무일도 할 수 없었지만 ‘미국주의’의 전도사 역할은 결코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2차대전중 잭 커비가 나치에 대항하는 미국의 애국주의를 고양시키기 위해 만든 <캡틴 아메리카>가 부활하고, 80년대 큰 인기를 모았던 가 새롭게 만화로 만들어지는 등 만화 속의 미국주의는 하늘을 치솟고 있다. 그들은 정말로 믿고 있는 걸까? 그들의 영웅이 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왜 아랍의 슈퍼 영웅만화는 볼 수 없는가?

불행하게도 나는 미국에 저항하며 세계평화를 지키는 아랍의 슈퍼 영웅 만화를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전쟁이 가져오는 참혹함이 어떤 것인지, 슈퍼 영웅들이 부숴놓은 건물들 아래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무엇인지는 <맨발의 겐>(나카자와 게이지, 아름드리)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미국의 원자탄은 아리따운 소녀의 얼굴을 짓이기고, 단란한 한 가족을 잿빛 조형물로 만들어버리고, 수많은 아이들에게 살아남았다는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 <슈퍼맨> 티셔츠를 군복 밑에 받쳐입은 미국 병사들 역시 열정적인 복수심과 애국심으로 총탄을 날리고 있지만, 결국은 아프가니스탄의 가엾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아이들 중 살아남은 누군가가 생체 핵병기로 개조되어 뉴욕에 남아 있는 10층 이상의 건물들을 모두 주저앉혀버리지는 않을까?

미국의 깃발 아래 뭉친 전세계. 소련과 중국까지 손을 맞잡은 때에, 옳다구나 달려드는 병사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맨발의 겐>과 함께 살아난 아이들. 패전의 죄책감으로 머리 숙이고 있다가 이제야 자위대의 위용을 인도양에 드러내고 있는 일본이다. 이미 지난 십여년 동안 일본의 재무장과 해외 파병을 부추기는 만화들이 보수 우익의 할아버지들은 물론 전공투 세대까지도 감염시켜왔다. <침묵의 함대> <정치 9단> <성역>, 그리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낸 고바야시 요시노리의 만화들.

나는 최근 고바야시의 <전쟁론>과 <대만론>을 꼼꼼히 읽으며, 만화가 지닌 엄청난 파괴력과 위험성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모든 게 ‘평화’로워 보이는 이 일본이 사실은 주부매춘, 원조교제, 십대살인 등이 판치는 ‘혼란’의 상태이며, 옴 진리교 사건을 지나며 드디어 ‘전쟁’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는 국민들 대부분이 세금만 내면 자기의 권리를 다했다고 생각하는 개인주의적 소비자에 불과한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제로기를 타고 가미가제에 나서겠다는 택시운전사의 애국주의에 감명을 받는다. 정말로 분명한 생각이다. 슈퍼 영웅에 대한 그의 태도까지도 그렇다. 괴수와 싸우는 울트라맨을 손가락질하며 그의 싸움으로 인해 쓰러진 사람들을 ‘희생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위선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괴수는 미국과 영국, 울트라맨은 일본군, 쓰러진 사람들은 동아시아의 민중. 그의 신비한 공식으로 일본은 패전국의 멍에를 벗고 떳떳이 세계 정치군사의 중심으로 돌아가려 한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만화가 가진 교묘한 강조와 비유의 방법으로 그의 말이 설득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슈퍼맨과 신밧드가 싸우면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나? 울트라맨과 배트맨이 서로 부둥켜 뒹굴면서 나에게 레이저총을 집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남벌>(야설록, 이현세, 세주문화사)의 오혜성을 보내서 그들 모두를 굴복시켜야 할까? 군국주의에 대한 대답은 또다른 군국주의밖에 없는 것일까? 만화는 우리에게 정의의 소중함을, 승리의 기쁨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무엇이 정의인지, 무엇이 승리인지, 왜 지금 아무 만화도 가르쳐주지 않는 건가? <최종 병기 그녀>(다카하시 신, 대원)는 몹시도 아름답지만, 또 왜 그렇게 무서운가? 왜 그렇게 작으면서 왜 그렇게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녀가 우리편이면 다행이겠다. 커트 실링과 랜디 존슨이 김병현과 같은 팀이어서 다행인 것처럼. 이명석/프로젝트 사탕발림 운영중 www.sugerspr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