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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걸, 이웃집 소녀 <파워 퍼프 걸>
2001-11-29

aninision

만약 어느날 갑자기 자신이 남들과는 다른 특수한 능력을 지닌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늘을 날 수 있고 맨손으로 콘크리트 벽을 부숴버리고 눈에서는 레이저빔이 나온다면…. 길은 세 가지다. 전세계를 순회하며 마술쇼나 서커스단의 ‘진기명기’의 주인공이 되든지, 국가의 특수기관에 납치되어 실험체나 특수공작원이 되든지, 자신의 능력은 최대한 숨긴 채 자신이 속한 도시나 지역의 정의의 영웅이나 나쁜 악당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세 번째의 경우다.

꿈을 좀더 키워 세계를 지키는 영웅이나 세계정복을 노리는 악당도 될 수 있겠지만, 앞서 말한 능력 정도로는 악당이 된다 해도 어느 정도의 첨단무기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 알기 힘드니 국가권력이나 군대를 상대하긴 힘들 것이고, 선한 편이 되더라도 성탄절에 모든 어린이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산타클로스가 아닌 이상 넓은 지구를 혼자서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해결해야 될 일이 동시에 발생했을 때 경중을 파악해 어느 한쪽으로밖에 갈 수 없는 마음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대부분 미국의 히어로들은 광속으로 날 수 있는 슈퍼맨 정도를 제외하고는 수비 범위가 기껏 넓어봤자 미국이고 대부분 특정도시 정도다.

그리고 보통 영웅이 되면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는데, 적들의 기습 테러는 물론이거니와 히어로 추종자나 기삿거리를 찾는 언론의 스토킹, 캐릭터산업의 모델로 쓰자고 제안해오거나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도와달라는 사람들 등을 피하기 위해 주변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되도록 튀지 않는 생활을 해야 된다. 그러다보니 보통 내성적이야 하고, 사건이 터지면 제일 먼저 자리를 피하는 겁쟁이 취급을 받아야 한다. 이러한 행동의 부작용 덕분에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처럼 신경쇠약 환자같이 되거나 ‘헐크’처럼 떠돌아다니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의 정체가 밝혀질 듯 말 듯 하는 긴장감보다는 간단명료한 상황전개를 바라는 층이 많아진 탓인지 최근의 영웅 중에서는 범인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1995년 크레이그 매크레컨이 제작해 ‘카툰네트워크’, ‘TBS’, ‘TNT’ 등을 통해 방영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파워 퍼프 걸>에서도 그렇다. 주인공은 지구를 지킬 완벽한 인조소녀를 만들기 위해 ‘설탕’과 ‘향신료’, ‘온갖 멋진 것’을 섞는 과정에서 실수로 들어간 제4의 요소인 케미컬 엑스에 의해 탄생한 3명의 슈퍼소녀들, 터프한 ‘버터컵’과 울보에 겁쟁이지만 욱하는 성격이 있는 ‘버블’, 그리고 차분하고 팀의 리더격인 ‘블라섬’이다. 마치 칸딘스키의 그림을 보는 듯한 굵은 그림선에 명도 높은 배색, 3등신의 캐릭터인 이 여전사들은 정체는 물론 집 위치까지 모든 시민에게 알려져 있다. 또래와 같이 학교까지 다니고, 악당과 싸운 뒤에는 수고했다며 이웃집으로부터 저녁식사 초대까지 받는 존재들이다. 과거의 영웅 주인공들이 들으면 꿈같은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이미 애니메이션 케이블채널 ‘투니버스’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이 시리즈는 ??부터 공중파 ???에서도 방영을 시작한다.) 우리 현실에서도 부러워 한숨쉴 사람들이 있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게 죄도 아닐 텐데, 일단 주목 대상이 됐다는 이유로 순간의 실수에도 온갖 소문의 난도질을 당하며 대중의 스트레스 해소에 이바지하는 엔터테이너들. ‘공인’이기 때문에 그런다고? 그렇다면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나온 ‘존경하지 않는 직업인’ 1, 2위를 차지한 사람들 중에서부터 골라야 되는 것 아닌가. 김세준/ 만화 애니메이션 칼럼니스트 neoeva@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