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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혜의 작업의 순간] 고기먹으러 혼자 가면 뭐가 나빠?
이다혜 2009-06-26

<씨네21> 7대 미스터리 중 하나. 어째서 마흔살 골드미스 팀장 e는 아직 미혼일까? <씨네21>이 워낙 결혼(나아가 출산·육아)에 관심없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니 ‘결혼이 싫어서’라면 이야깃거리도 아니다. 그런데 e는 독신주의가 아니다. 결혼을 하고 싶어 하고 자격조건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다. 미모면 미모(화장했을 때 전투력 200% 상승), 동안이면 동안(낙천적인 걸로 따지면 대학생삘이다), 성격이면 성격(대한민국 성격 좋은 인간 톱3에 들 수 있다), 재력이면 재력(자기 명의의 차와 방 3개짜리 아파트, 직업있음), 쇄골이면 쇄골(목욕탕도 같이 가봤는데 다른 부위도…), 집안이면 집안(화목한 가정의 전형)…. 내가 아는 결혼한 그 어떤 기혼녀보다 현모양처감인데 어째서?

지진희, 엄정화 주연의 한국판 드라마가 방영을 앞두고 있는 <결혼 못하는 남자>를 보면 그 궁금증에 대한 해답 비슷한 게 보인다. 마흔을 코앞에 둔 독신남 구와노 신스케(아베 히로시)는 건축설계사다. 고집이 세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알고 보면’ 세심하고 사려 깊은 남자다. 어느 날 혼자 집에서 복통으로 뒹굴다 옆집 아가씨의 도움으로 병원에 실려가는데, 그곳에서 30대 중반 미혼인 여의사 하야사카 나쓰미(나쓰카와 유이)를 알게 된다. …그리고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두 사람이 잘되면 좋겠다며 설레는 건 오히려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다. 둘 다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고 능력있는 사회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아무리 뜯어봐도 결혼을 ‘못할’ 위인들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어째서? 별로 이상하거나 신기할 건 없다. 어느 날 정신차리고 손가락을 헤어보니 내 나이 서른아홉… 이런 거다. 생각하지 않아도 시간은 가고,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데 주변에서는 자꾸 나이 운운하면서 결혼 가지고 들들 볶으니 귀찮을 수밖에. 나이가 찼다고 성에 차지도 않는 사람하고 살 수는 없잖겠나. 그런 말 하면 보태준 것도 없는 사람들은 “눈이 높아서 안된다”며 한마디씩 해 괜한 성질을 돋운다. 주변 친구는 하나씩 짝을 찾아 떠나 혼자 노는 법도 제법 익혔다. 하지만 혼자 잘 논다고 해봐야 궁상맞다는 소리나 듣는다. 기혼자일수록 섹스도 안 하고 여행도 안 하고 저축도 안 하는 게 세상 이치더라만 여튼 안 하면 두고두고 말 듣는 게 바로 결혼이다.

12회로 완결된 <결혼 못하는 남자>의 각 회차 제목은 그런저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방어적이 된 나이 꽉 찬 기혼자들의 심경을 대변한다. “혼자가 좋다는 데 뭐가 나빠”, “좋아하는 음식 먹는다는 데 뭐가 나빠”, “돈 쓴다는 데 뭐가 나빠”, “휴일날 혼자라는 데 뭐가 나빠”…. 드라마 속 구와노와 하야사카가 결국 서로를 향해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주변의 설레발도 아니고, 돈이나 장래에 대한 불안도 아니다. 상대가 마음에 들었고,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비밀을 기대하고 읽어온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진짜 이유가 없는 걸 어쩌겠나!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이래저래 흠잡을 데도 없고 연애를 하고 싶어 하기도 하고 놀기도 잘하는데 애인이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 더더욱 옆에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공개할 수 없는 상대와 연애를 하기 때문에(기혼자, 동성 애인, 사내 커플이 대표적이다) 알리지 않고 있는 것일 뿐일 때가 많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