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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섭 평론집 <영화, 내 영혼의 순례>
2001-11-29

당당한 편파성이 아름답다

심영섭 지음/ 세상의 창/ 1만2천원

심영섭은 논쟁을 피하지 않는 평론가다. 논쟁이 풍부하지 않은 한국의 영화평단에서, 최근 2, 3년 동안 어떤 방식으로든 심영섭이 연관되지 않은 논쟁을 발견하기란 힘든 일이다. 멜로영화 논쟁, 김기덕 논쟁, 한국영화의 폭력성 논쟁에서 그는 매번 글과 말로 선명한 당파적 주장을 펼쳤다. 무엇보다 그의 글 자체가 종종 논란을 일으켰다. 김기덕의 <섬>을 맹렬히 비판한 심영섭의 글은 아마도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많은 반론을 불러일으킨 비평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개인적 체험 하나를 말하자면, 사설 영화비평 강좌에서 수강생들 가운데 반 이상이 심영섭의 글을 메타 비평의 텍스트로 삼은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심영섭은 당당하게 편파적이다. 이를테면 그는 “<섬>은 도식적이고 위험하며 퇴행적이다”라고 쓴다. 혹평받은 영화 <혹성 탈출>에 대해선 “팀 버튼이 <혹성 탈출>에서 해내지 못한 것을 다시 해낼 감독은 없으리라”라고 딱 부러지게 옹호한다. 심영섭에게 논적이 많은 건 당연하다. 균형 강박증에 시달리는 영화 저널리즘 종사자들에게 심영섭의 글은 때론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때론 균형주의의 왜소함을 상기시키며 불편함을 준다. 누가 뭐래도, 이건 그의 장점이다.

깃발만 선명했다면, 심영섭은 아마 목청 큰 선동가쯤으로 여겨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뾰족한 주장은 그러나 대개 단단한 독해력과 세련된 문장력 위에 서 있다. 그는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임상심리학자이며, 많은 환자와의 상담을 통해 현대인의 정신병리를 직접 관찰해온 전문의다. 이건 평론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지적 배경이며 그의 남다른 독해력의 바탕이 된다. 한 여인과의 상담 경험을 떠올리며 시작되는 <내 어머니에 관한 모든 것>에 관한 평은 아마도 그의 임상 체험과 지식과 영화광적 감수성이 부드러운 하모니를 연출하는, 드물게 만나는 아름다운 비평이다.

주장과 분석이 서로 격려하며 공존할 때 심영섭의 글은 뛰어난 비평이 되고 훌륭한 산문이 된다. 그러나 양자가 늘 행복하게 만나는 건 아니다. 예컨대 일부 평자가 혹평한 <어둠 속의 댄서>를 옹호하면서, 그는 이 영화의 형식적 자질을 좀더 깊이 파고들기 전에 이 영화의 감정적 장력을 선언해버린다. 그리고 글의 앞뒤에 자신이 이 영화에 얼마나 감동받았는지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감상문 아닌 논쟁적 비평에서라면 이 글쓰기 방식에 동의하긴 어렵다.

과잉 자기 노출은 평론가들이 가장 유혹을 느끼기 쉬운 독이며 함정이다.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밟아가면서 심영섭은 정서적 지적 공감대를 넓혀왔다. 심영섭의 첫 비평집인 <영화, 내 영혼의 순례>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활발한 평론가가, 임상심리학자로서 예민한 여성으로서 불안한 생활인으로서 또 철없는 영화광으로서 영화와 울고 웃으며 보낸 수년간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 속의 심영섭을 보는 일은 그 속의 영화를 보는 일만큼 흥미롭고 때로 뭉클하다.

허문영 moon8@hani.co.kr▶ 심영섭의 <어둠 속의 댄서> 영화읽기

▶ 심영섭의 <섬> 비판글